8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시민아파트 일원에서 열린 ‘광천시민아파트를 스케치하다’ 행사에 참여한 한 그림 작가가 접이식 의자에 앉아 드로잉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주성학 기자

“광천시민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도시화의 역사와 민주화의 기억이 동시에 흐르는 공간입니다.”

8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광천동성당 앞에서 열린 ‘광천시민아파트를 스케치하다’ 행사에 참여한 50여명의 그림 작가들에게 임낙평(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 같이 말했다.

임 이사장이 가리킨 연노랑색과 갈색 벽돌이 뒤섞인 광천시민아파트는 1970년 광주 최초로 조성된 연립형 아파트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거주하며 들불야학의 거점으로 활용했던 공간이다.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와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은 오는 8월 이후 철거되는 이 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붓과 펜으로 기록하기 위해 스케치 행사를 마련됐다.

임 이사장의 간단한 설명이 끝난 뒤 작가들은 골목 끝 그늘진 담장 아래, 낡은 철문 앞, 아파트가 보이는 작은 공터 등에 각자 자리를 잡고 스케치에 들어갔다.

작가들은 샤프와 볼펜, 수채화 용지 등을 꺼내들고 각자의 시선으로 광천시민아파트의 마지막 풍경을 화폭 위로 옮겼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외벽의 물때, 금이 간 건물 번호판, 좁고 굽은 골목까지 작가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담았다.

일부 작가들은 윤상원 열사가 머물렀던 공간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이를 참고해 실내 모습을 그렸고, 인근 광천동성당을 드로잉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조혜경(46·여)씨는 “아파트 철거 소식을 듣고 건물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며 “정돈된 건물보다는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순천에서 온 정성모(68)씨는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이 공간은 특별하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살리려면 채색에 신경 써야겠지만, 그때와 지금의 현장감에는 차이가 있어 현재 눈앞에 있는 풍경을 중심으로 풀어내고자 한다”고 전했다.

2시간여가 지난 오후 4시30분께 그림을 완성한 작가들은 한데 모여 각자의 작품에 대해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완성된 작품들은 운영진이 자료집으로 만들어 아카이브 형식으로 제작할 계획이며, 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과 논의해 시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전시회도 검토하고 있다.

서동환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 회장은 “광천시민아파트는 들불야학이라는 시대의 정신이 깃든 역사적 장소”라며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곳을 기록했고, 그 기록이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성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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