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은 가사문학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문헌을 보관 전시하고 이를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지난 2000년 한국가사문화관을 건립했다. 담양 지곡리에 자리잡은 가사문학관이 주변 풍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특별취재반

담양은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산실이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했던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이 불합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피해 담양에 자리잡으면서 가사문학을 창작했다. 이들은 담양으로 내려와 누정을 건립하고 인재양성은 물론 시단을 결성하고 시회를 통해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며 즐겼다. 지리적으로 천혜의 경관을 갖춘 데다 담양을 비롯한 전라도지역 출신들이 남달리 풍류를 즐겼던 것도 한 요인이다. 지금도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다. 또 주 무대였던 식영정과 면앙정 등 29개의 정자가 잘 보존되고 있다.


◇자연과 함께 내면정서 표출
가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통상 조선 성종 때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을 효시로 삼고 있다. 조선 당시 대부분의 문학이 한자를 기반으로 한 것과는 달리 대체로 가사의 발생은 한국어 문학이 운문 문학에서 산문 문학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생긴 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처음에는 가사가 노래로 불렸고 양반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상춘곡을 모태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가사 문학은 차천로의 강촌별곡, 오세문의 역대가, 송순의 면앙정가 등을 거쳐 정철과 후기의 박인로에 걸쳐 대성한 후 이른바 가사 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뤘다. 특히 면앙정가는 무등산 동쪽 끝에 자리한 제월봉의 벼랑에 세워진 면앙정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사계의 풍광을 읊은 강호가사다. 자연경관을 묘사한 수법이 뛰어나고 작품 내면에 담긴 정서와 아름다운 표현법이 독특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가사다. 담양권이 한국 가사문학의 산실로 꽃을 피운 것도 면앙정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송순은 면앙정가를 통해 자연과 함께한 즐거움을 표출하고 동시에 자신의 삶을 임금의 덕으로 생각하는 연군의 정을 담았다.
면앙정가에 이어 등장한 정철의 성산별곡은 가사계(歌辭界)의 백미를 이뤘다.
‘성산’은 작품의 주 배경인 서하당과 식영정이 위치한 지명으로 현재의 남면 지곡리 일원이다.
성산별곡은 서사·춘추·하사·추사·동사·결사 등 6단으로 구성돼 있다. 서사에는 성산에 묻혀사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의 고아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춘사에는 아침 향기에 잠을 깬 주인의 일과를, 하사에서는 꾀꼬리 소리에 낮잠을 깬 주인의 한흥을, 추사에서는 배를 타고 즐기는 호수의 달맞이를, 동사에서는 아름다운 설경, 결사에는 산중에 은거하며 술과 거문고를 벗삼은 주인의 풍류를 그리고 있다.

‘그림자를 쉬게 한 정자’란 뜻을 담고 있는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이자 스승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이정옥 한국가사문학해설 연구원장이 식영정에서 가사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시문의 중심 누정
이같은 시문의 중심무대는 누정(樓亭)이다. 누정은 피서(避暑)와 유락(遊樂)을 비롯 시작(詩作)활동과 강학(講學) 및 경관 조망을 위해 건립된 건축물이다. 정유재란 이전까지만 해도 담양에는 약 80여개의 누정이 있어 당시 시작 활동의 중심이 됐다. 이후 정유재란때 대부분의 누정이 소실돼 현재는 29개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영정과 면앙정, 환벽당 등이다.
‘그림자를 쉬게 한 정자’란 뜻을 담고 있는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이자 스승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임억령은 이곳에서 김성원을 비롯, 고경명, 송강 정철 등에게 시문을 가르쳤다. 그래서 이들 4명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했으며, 식영정을 사선정이라고 불린다.
특히 정철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식영정을 무대로 많은 선비들과 친분을 나누었으며, 시문을 익히고 ‘성산별곡’ 등의 문학작품을 지었다.
지방기념물 제1-1호로 지정돼 있는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한 특이한 구조다.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의 충효동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1972년 1월 29일 광주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가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하고 교육에 힘쓰던 곳이다. 벽간당이라 불리기도 했던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이며,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가 걸려 있고,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조선 중종 때 면앙정 송순은 고향 담양으로 내려와 면앙정을 지어 시작 활동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이때 지은 면앙정가는 모두 79구다. 원 가사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그가 면앙정에서 여생을 보낼 때 그 곳 경치를 읊은 것으로 묘사가 극히 진솔하게 묻어난다.
이같은 누정은 지금도 잘 보전돼 주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특히 가사문학의 주요 무대였던 환벽당과 식영정은 소쇄원과 함께 담양의 ‘일동삼승지’로 묶어 담양 10경의 하나로도 손꼽힌다.


◇한국가사문학관 다양한 작품 전시
가사문학을 전승 계승하기 위해 담양군은 지난 2000년 한국가사문학관을 건립했다. 총 1만 6천556㎡의 부지에 2천22㎡ 규모의 한옥형 본관과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유물 1만1천461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문헌, 가사 관련 도서 약 1만5천권 등이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한국가사문학관에는 송순(宋純)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遺墨) 등이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소쇄원·식영정·환벽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돼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담양군은 가사문학을 보다 친밀하게 감상할수 있도록 탐방로를 개설하는 등 현대적인 시각에 맞게 개선해 운영중이다.
군은 지난해 10월 소쇄원과 식영정 등 남면의 가사문학권 일대가 국토해양부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산책탐방로 조성사업인 ‘누리길’ 조성사업 구간으로 선정됨에 따라 국비 5억3천만원과 지방비 5천만원을 들여 그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자연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가사문학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남면 일대 6.2㎞ 구간을 탐방로로 조성중이다.
탐방로는 독수정에서 시작해 명승 제40호인 소쇄원을 지나 환벽당, 가사문학관, 성산별곡의 탄생지 식영정(명승제 57호)을 거쳐 광주호 갓길을 따라 수남학구당까지 도보로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군은 자연상태를 최대한 보존·유지하기 위해 쉼터와 편의시설, 안내표지판 설치 등 탐방로 주변 정비도 최소화할 예정이다.
담양군 관계자는 “가사문학 누리길은 누정 등 가사문화 유적과 수려한 자연 경관을 하나로 연결해 역사교육의 장과 사색을 통한 휴식의 공간으로 지역민과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고
풍류 느끼면서 인생의 풍요 만끽
이세호 한국가사문학관장

담양은 무등산을 둘러싼 정자문화의 산실로 유명하다.
우선 타 지역과 비교해 유례없는 수많은 누정이 산재해 있고, 그곳에서 많은 문인들이 교류하고 소통했다. 때로는 풍류와 여유의 공간으로, 때로는 저항과 투쟁의 공간으로, 때로는 학문과 문예의 공간으로서 그 역사적 위상을 높여왔다.
이제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맞아 담양 누정은 가사문학의 모태로서 중요성뿐만 아니라 난세와 사회적 위기에 지식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일상성의 진면목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커지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들은 역사적으로 의리와 명분을 중시했기 때문에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피해 호남 지방으로 낙남해 이곳 담양에 많은 누정을 건립하고 인재 양성은 물론 시란의 결성과 시회를 통해 시가문학을 창작했다. 600여년에 걸쳐 이서의 ‘낙지가’를 필두로 20세기 정해정의 ‘민농가’에 이르는 가사의 맥, 면앙정 송순의 ‘면앙정가’부터 유도관의 연시조에 이르는 시조의 맥을 끊임없이 이어온 것은 국문학사상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이들이 남긴 시가문학의 한구절 한구절 모두 당대 일상의 희노애락, 정치적 욕망과 좌절, 문예적 풍류와 서사, 자연에 대한 예찬과 소요 등 다양한 모습을 내재하고 있는 바 오늘날 역사속에서 문사철(文史哲)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의미를 전달해주는 곳이 한국가사문학관이니 어찌 지식인으로서 교양인으로서 찾아가보지 않겠는가!
조선 시가문학의 한 중심에 서 있었던 담양의 시가문학이 아니라 한국의 시가문학을 느끼고 싶다면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으면 된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자리한 한국가사문학관은 영상실에서 담양 누정의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는 길라잡이를 보여주고, 1전시실에서는 담양가사 18편을, 2전시실에서는 전국 가사를, 3전시실에서는 누정의 아름다움을 읊은 한시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함께 잘 어울려있는 한국가사문학관에서 새로운 풍류를 느껴보면 더 없이 인생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다. 흔히 가사문학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훈민정음에서 볼 수 있는 우리말 노래이다. 가사는 가곡, 가요곡, 오페라 등에서 노래의 내용이 되는 글이요, 즉 노래이다. 가사는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태 문학이다. 시조와 같이 문예적 동기로 제작해 그 자체가 율격시이기 때문에 흥이 나면 입을 통해 작곡의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읊는 글이라는 점이다.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면앙정 송순, 소쇄원(양산보), 식영정(임억령.김성원), 환벽당(김윤제), 송강정(정철), 관수정(조여춘), 명옥헌(오이정), 연계정(유희춘), 몽한각(이서) 등 주인의 기질이 잘 나타나 있는 정자의 참 모습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로운 장소로 사계절 바뀌어 가는 시가 문학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시흥이 절로 나는 곳이다.
현대인들은 참으로 바쁘게 산다. 아침햇살을 느낄 틈도 없이 석양빛이 어느새 눈썹위에 내리는 시간을 맞이할 때 긴 여정을 마친 나그네의 피곤한 모습으로 풍요속에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심신을 맑게 하려면 고전문학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찾아보라고. 한국가사문학관이 11년이라는 세월을 등에 지고 오늘도 쉼없이 물레방아를 돌리듯 돌아가고 있다. 담양의 아름다운 가사문학을 통해서 인생을 살찌우면 어떨까.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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