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 있는 정암의 적려유적지. 이곳은 정암이 귀양와 사약을 받기 까지 약 1개월 동안 기거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정암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능주면 소재지에서 승용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사를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그러나 이곳은 외지인들의 화순군 투어에서 필수 코스중 한 곳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적려유허비가 있기 때문이다. 남정리 마을 한 복판에 자리잡은 적려유허지는 정암이 꿈을 펼치지 못하고 유배돼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은 곳이다. 영정을 모신 영정각 등 5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정암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정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꾸준히 이곳을 찾고 있다.

적려유허비.

◇능주 유배지서 사약받고 운명
조선 개국 공신 온(溫)의 5대손이며,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 조광조가 화순과 연을 맺은 것은 능주가 그의 유배지이자 최후를 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다 반대파 모함을 받은 정암은 중종 14년(1519)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된지 1개월만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
정암은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능주에서 능성현 출신의 학포 양팽손(梁彭孫, 1488-1545)과 친분을 쌓았다.
양팽손은 조광조 등 사림과 함께 개혁 정치를 펼쳤던 인물이었다. 양팽손 역시 기묘사화로 파직 당한 후 고향에 내려와 있던 참이었다. 화순 능주로 유배지가 정해지면서 둘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 서로를 위로했다.
정암은 유배 온 뒤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다가올 사약을 예견하기도 한 ‘능성적중시(綾城謫中詩)’를 지었다. /誰燐身似傷弓鳥(수련신이상궁조)누가 활 맞은 새 같다고 가련히 여기는가 /自笑心同失馬翁 (자소심동실마옹) 내 마음은 말 잃은 마부같다고 쓴웃음을 짓네 /猿鶴定嗔吾不返 (원학정진 오불반)벗이 된 원숭이와 학이 돌아가라 재잘거려도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 /豈知難出覆盆中(개지난출복분중)독 안에 들어 있어 빠져 나오기 어려운 줄을 어찌 누가 알리오/
조광조는 자신의 처지를 ‘활 맞은 한 마리 새’로 비유하고, 마음은 ‘말 잃은 마부’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 위로는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약을 받게 된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는 양팽손에게 “신이 먼저 갑니다”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약을 마셨다. 조광조의 마지막 임종을 친구인 양팽손이 지켜줬다.
양팽손은 조광조가 죽자 시신을 수습해 손수 염을 하고 자신이 사는 인근 마을 골짜기에 가묘를 만들어 줬다. 조광조의 시신은 사망 3년 후 후손들이 선영이 있는 경기도 광주 심곡서원으로 옮겨져 안장하기 까지 화순에 있었다.
이에 조광조의 후손들은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죽수서원에 조광조와 양팽손의 영정을 모시고 지금도 매년 음력 3월1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양조씨 문중은 처음에는 정암을 위한 제사만을 지내다 양팽손의 의리를 감복해 두분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고 있다.

정암의 영정

◇개혁정치의 상징
조광조는 조선조 개혁정치의 상징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가 주창한 혁신적인 내용은 후대에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개혁을 위해 현량과 실시를 주장했다. 지방의 어진 사림과 성균관의 유생들을 정치에 참여시키기 위한 천거관리 등용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승과와 소격서 폐지를 주장했다. 이는 성리학의 절대화를 위한 정책으로, 승려를 뽑는 과거시험인 승과와 미신의 성향이 강한 도교를 배척하는 뜻이었다.
향약제도 시행도 역설했다. 공론정치가 강화되면서 향촌자치를 실현하고, 재지사족의 의견도 정치에 수렴하고자 송(宋)의 여씨향약을 수용해 일반민에게까지 보급함으로써 향촌을 운영하고자 했다.
최초의 지방자치제를 염두해 둔 것으로 풀이된다.
공납제의 폐단 시정도 주장했다. 농민 부담을 감소시키고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방납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했다.
이밖에 소학(小學)교육의 강화(교육과 가정생활에서까지 유교적 가치관을 확립시키기 위한 노력), 경연강화(왕에 대한 교육, 언론활동, 공론을 강화해 중종을 모범적인 군주로 만들려고 노력)을 비롯, 중종반정때 당시 반정공신(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위훈(업적과 공적에 대한 포상) 삭제를 추진했다.
급기야 1519년 반대를 무릅쓰고 중종반정의 공신들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부당한 녹훈자(錄勳者)가 있음을 비판해 결국 105명의 공신 중 2등 공신 이하 76명에 이르는 인원의 훈작(勳爵)을 삭제했다. 이러한 정책 수행은 반정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홍경주(洪景舟)·남곤(南袞)·심정(沈貞) 등에 의해 당파를 조직해 조정을 문란하게 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훈구파들은 벌레가 ‘조광조가 왕이 될 것(走肖爲王)’이라는 문구를 파먹은 나뭇잎이 임금에게 바쳐지기도 했다. 결국 사림파의 과격한 언행과 정책에 염증을 느낀 중종의 지지를 업은 훈구파가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는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킴에 따라 능주에 유배돼 사사됐다.
그러나 후일 사림파의 승리에 따라 선조 초에 신원돼 영의정이 추증되고, 문묘에 종사됐으며, 전국의 많은 서원과 사당에 제향됐다.

◇왕도정치 실현 구현
정암 사상의 핵심은 덕(德)과 예(禮)로 다스리는 유학의 이상적 정치인 왕도(王道)의 현실 구현이다. “도학을 높이고, 인심을 바르게 하며, 성현을 본받고 지치(至治)를 일으킨다”는 진술로 압축된다. 도학정치의 구현인 지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학문과 경륜이 완숙되기 전에 정치에 뛰어들어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개혁을 추진하려다가 실패했다는 점은 후대 사림들에게 경계해야 할 점으로 평가됐다.
훈구파의 반격으로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개혁은 한때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의 이념과 정책은 후대 선비들의 학문과 정치에 중요한 지침이 됐다. 조선 후기까지의 모든 사족(士族)은 그가 정몽주·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로 이어져 내려온 사림파 도통(道統)의 정맥(正脈)을 후대에 이어준 인물이라는 점에 정파를 초월해 합의하고 추앙했다. 그것은 학문의 전수 관계로 인한 것만이 아니고 목숨을 걸고 이상을 현실정치에 실행하려 한 노력에 대한 경의였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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