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 원산동에 자리잡은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제봉 고경명과 그의 장남 고종후, 둘째 고인후 등 3부자와 유팽로·안영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제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포충사에는 동재와 서재, 강당과 장서각 등이 자리잡고 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다. 이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선 호남과 호남사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구다. 임진왜란 때 바람 앞에 놓인 등불 같은 조선의 운명을 구한 이순신 장군은 당시 “국난을 극복한 가장 큰 공은 남도 사람들”이라고 썼다. 임금도 궁궐을 떠나고, 관군은 지리멸멸하는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이 바로 남도인이었다. 남도는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의병 봉기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봉 고경명이 있었다. ◇문과에 장원급제하다
아름다운 시문으로 일찍이 문명(文名)을 떨친 제봉 고경명(1533-1592)은 광주시 남구 압촌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기묘사화 때 파직된 고운(1479-1530)이고,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고맹영(1502-?)이다. 그는 26세 때인 명종 13년(1558)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이후 앞길은 전도양양했다. 장원 급제 후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고, 이어 공조좌랑,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지평, 홍문관 부수찬을 거쳐 1563년 홍문관 교리(정 5품)가 됐다.
하지만, 풍파도 겪었다. 명종 18년(1563) 이조판서 이량(1519-1563)의 탄핵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관직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18년을 보내기도 했다.
선조 14년(1581) 영암군수로 재 등용된 이후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선조 23년(1590), 마지막 관직인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1591년 동래부사에서 물러나 낙향했다. 그 때 그의 나이 59세였다.

◇‘마상격문’으로 의병들 운집
공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 들었다. 1592년 4월14일 부산진으로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동래부사로 있었다면 그는 동래에서 왜군과 만나야할 운명이었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했다. 침략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한양에 입성했다. 그는 바로 전장으로 달려갔다.
5월 29일, 고경명을 비롯한 안영·유팽로·양대박 등 21개 지역의 유생들이 군사를 이끌고 담양의 추성관에 모였다. 이 모임에서 그는 의병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그의 나이 60세였다.
고경명이 깃발을 들자 전라도 각지에서 6천여명의 민초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곧장 의병군 편대를 정비해 담양을 출발한 그는 왜군에 의해 유린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의병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각 도의 수령과 민중에게 격문을 보냈다.
‘국운이 비색하여 섬나라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 국가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는데 수령이나 관군들은 죽기를 두려워해 도망치기 일쑤니 어찌된 일인가. 신하로서 왕을 잔학한 왜적 앞에 내버려둔단 말인가. 각 읍의 관군, 수령, 민중들이여, 무기를 들고 군량을 모으며 모두 분연히 일어설 때다. 구국을 위해 다 함께 목숨을 걸고 앞을 다투어 나설 줄로 믿는다.’
이것이 말 위에서 쓴 그 유명한 마상격문(馬上檄文)이다.
간담을 울리며 용기를 불어 넣은 이 간절한 호소에 호남의 열혈남아들은 고경명의 휘하로 달려왔다. 식자들의 심금을 울린 이 격문을 후대의 사람들은 최치원의 ‘황소격문(黃巢檄文)’이나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와 견주는 명문으로 평가했다.
그를 앞세운 의병들은 담양을 출발해 태인을 거쳐 금산으로 향했다. 고경명 의병은 호남에 침입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금산의 왜군을 공격했다. 조총이라는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왜적에 맞선 의병들은 열악한 전투력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기습공격과 매복작전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하지만,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의병들이 잘 훈련된 왜군에 대항하기는 무리였다. 전열을 정비한 관군과 합동작전을 전개했지만 왜군의 집중공격으로 관군이 무너지면서 고경명군도 무너지고 말았다. 지리멸멸하는 의병들 속에서 그의 제자들은 고경명에게 우선 피하고 후일을 도모하라고 외쳤으나 그는 둘째 아들 인후와 함께 몸을 감싼 채 전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거병한 지 한 달 여 만이었다.
고경명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 종후가 의병을 일으켰고 능주에서는 최경회가, 보성에서는 임계영이, 남원에서는 변사정을 주축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모두 고경명 휘하의 의병들이었다. 고경명의 피가 의병운동에 불을 지펴 호남과 조선 땅을 지켰던 것이다.
후학들은 조선조의 기묘사림의 조광조 이후 호남사상의 맥을 이은 이로 고경명을 꼽고 있다. 조광조가 이루려다 실패한 개혁은 고경명에 의해 외세침략에 대항하고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수용됐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철학은 조선후기의 실학, 항일의병,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포충사 경내와 그 언저리를 돌다 보면 60이 된 고경명이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그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또 그와 함께 목숨을 바친 충의의 인물들의 행적도 살펴볼 수 있다.

◇3부자의 신위를 모신 포충사
1974년 광주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고경명과 그의 장남 고종후(1554-1593)·둘째 고인후(1561-1592) 등 3부자와 유팽로·안영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고경명을 따라 의병에 참여해 왜군과 맞서 싸웠던 둘째 아들인 고인후와 유팽로·안영이 모두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과 함께 전사했으며 큰아들인 고종후만 겨우 살아 남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우를 잃은 그는 다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나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1601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국이 안정되자 호남지방의 유생들이 왜란 때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한 이들을 제향하기 위해 제봉산 자락에 사당을 지었다. 이어 1603년 박지효와 후손들이 임금에게 사액(賜額)을 청해 ‘포충’(褒忠)이라는 이름과 편액을 받았다.
포충사는 1865년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정리할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폐쇄되지 않았던 전남의 2대 서원 가운데 하나로도 유명하다.
포충사에서 특히 이채로운 것은 옛 사당의 입구 홍살문 옆에 있는 자연석에 새겨져 있는 봉이(鳳伊)와 귀인(貴仁)의 비문이다. 이들은 고경명의 충직스러운 노비로, 주인과 함께 의병에 참가했으며, 금산싸움에서 고경명과 고인후 부자가 전사하자 그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장사지냈다. 이듬해에는 다시 살아 남아 있던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를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충의의 인물들이다. 사당 앞에는 동재와 서재, 강당과 그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이 있다. /특별취재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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