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8일(목요일)
홈 >> 기획 >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찬란했던 옛 榮華는 간곳없고, 왜곡되고 쇠락해버린 아픈 흔적만 남아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6> 중국 <만주-잃어버린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 입력날짜 : 2014. 08.06. 19:40
박종석 作 ‘고구려 무덤
2012년 한해는 다양한 학술조사와 함께 그림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편이었다.

10여 명의 예술관련 인물연구와 함께 남도 유배문화 탐방 기획 참여 그리고 우리나라 고대역사와 연관된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남도 문화원형, 예술 꽃으로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국내 답사 2회, 내몽골과 만주지역 등 해외답사 2회로 분주한 여정이었다.

초여름에 1차 해외조사 탐방은 중국의 대련, 개주, 요하, 객좌 동산취, 건평, 우하염, 적봉, 오한기, 쌍요, 부여현 농안, 길림의 동단산 성지, 장춘 그리고 인천으로 귀국한 일정이었다. 과거, 대련은 고구려 무덤이 있었던 곳으로 현지 중국인은 고리묘라 불리우고 있었다. 조사 후 방치된 쓰러진 표석을 고쳐 세우고 많은 분묘 흔적 앞에 머리 숙여 참배하고 돌아선다.

만주에서 필자.
왠지 허전하고 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유는 약소국의 서러움 때문이었으리라?

찾아 헤매고 묻고 또 물어서 우리의 역사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리고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고 또 자주 감동하고 가끔은 한 끼 식사를 건너뛰며 다시 이동한다. 임대한 8인승 봉고차로 만주지역까지 북진하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끝없는 녹색의 옥수수 밭이었다. 그 드넓은 땅이 과거에는 우리의 땅이요. 조상들의 뼈와 살이 묻어 있는 역사이자 우리의 뿌리인데….

현재까지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역사의 흥망성쇠를 어찌 하리요! 참으로 허허로운 현장에서의 발동하는 애국심이지만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홍산문화와 고인돌문화 원형을 탐사하던 중 동산취에서 남도의 고인돌과 똑같은 유적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중국 정부가 한국인들의 관광 자원을 염두 해서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우리의 유적들을 조금씩 손질하고 관리하는 것은 철저하게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과정임을 여기저기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그들의 역사왜곡 진행형 앞에 우리 정부와 제도권 학자들은 점잖게 기지개를 켜는 사자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는 순한 토끼 같다. 한반도 주위 강대국들의 영토 확보전쟁에 우리의 배부른 정치인이나 역사학자들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국민들이 주는 밥 먹는 묵언 행자승 같다. 또한 이웃나라 일본의 수장이 한국인은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깔보는 사건 또한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 처한 우리의 현실이자 정치, 경제, 교육철학, 민주주의 후퇴 등 제반의 의식구조에서 무시 당할만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동모산’
탐방 조사의 마무리에 길림의 연변에 도착한다. 우리의 애국지사 후손들이 많이 사는 조선족 도시에는 소수민족 보호와 배려로 중국어 및 한글 간판이 즐비하니 길 찾기와 의사소통에는 불편이 없었다.

이젠 젊은 3세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거의 노인들만 지키고 있는 조선족 자치주이지만 정겨운 지역이다. 우리 일행들은 맛이 있는지 없는지 묻지 않고 무조건 조선족 식당을 애용했다.

이동 중에 도착한 허름한 고려 촌락의 시골마을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 이후 서구식 아파트 문화에 잠식당해 초가집은 거의 볼 수 없다.

고려식당에서 점심을 겸해 반주로 고려 술을 마실 때는 옛 전통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다. 누구나 해외 나가면 저절로 애국심이 생겨난다는 말은 위아래 없이 진정성이 담겨 있으리라.

‘고조선 유물’
상전벽해가 된 만주 땅의 탐방에서 평소 책을 통해 접한 몇 분의 존경하는 애국지사들이 생각난다.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신흥무관학교를 건립한 이회영선생과 6형제, 석주 이상용선생과 그 가족들, 그리고 님 웨일즈(Nym Wales)에 의하여 쓰여진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장지락선생이 떠오른다.

근대사, 동토의 땅을 피땀으로 개간하고 독립의지로 뼈를 묻힌 애국선열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 한 것 아닌가? 애국지사들의 자손들은 해방 이 후 친미, 친일파의 득세로 경제적 및 여러 여건에서 어렵게 살고 있음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아쉬움과 빈구석이 많지만 나의 조국이기에 그래도 미치도록 사랑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의 불합리한 역사왜곡과 영토전쟁의 현실에서 울분을 토할 길 없는 우리 역사뿌리 찾기 1차 학술조사를 마치고 필자는 현장 사생의 스케치 그림을 가지고 따뜻한 둥지로 귀환 한다. 지치고 수면이 부족한 빽빽한 여정이었지만 역사탐방을 통해 나의 의식은 허물을 벗은 나비처럼 뜻 깊은 몸짓이었다.
‘확독’


kjdaily.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