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1(금)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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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의 불편과 정보의 한계 때문에 왕래와 접촉이 편한 지역별로 학문과 문화가 발달해 영남유학이니, 기호유학이니, 호남유학이라고 호칭하면서 지역에 따라 학맥과 학통이 연결되거나 더러는 독특한 학문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나라 전체로 보면 조선유학이지만, 그러한 여러 제약과 한계 때문에 영남학파·기호학파·호남학파라 부르면서 유학사상이 발전됐던 것이 조선 시대의 일이었다.
그래서 서울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창설돼 기호학파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전통학문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서면서 한국학 전체에 대해서도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영남에는 안동에 국학진흥원이 설립돼 영남학파의 학문적 전통과 사상의 계승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지역의 분권화가 가속되고 지방자치제도가 급속히 발전되는 시대적 상황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남 연구기관 조성 외면시
그렇다면 호남의 전통적 학문도 참으로 뿌리 깊은 역사와 학문적 업적이 너무나 많고 찬란한데, 왜 호남학에 대한 연구기관의 설립이나 유지발전의 계책은 세우지 않고 있는 것인가?
영남에 퇴계 이황이나 한강 정구가 있었다면 기호에는 율곡 이이나 사계 김장생이 있어서 학문과 문화가 발전했던 것처럼 호남에도 하서 김인후나 고봉 기대승이 있어서 지역을 대표하는 조선의 유학자로 활동했는데, 왜 호남에는 그런 학문을 계승 발전시키고 전통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학문을 창조할 연구기관의 설립이나 연구 환경의 조성이 외면당하고 있는가?
지방자치제도가 발전하고, 지역의 분권화가 가속되는 현대 사회에서, 지역의 균형발전이나 편중현상에 대한 타파는 시대적 요구이자 발전 추세의 정당한 방향이다.
오늘날 호남학 계승 발전 정책의 구상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호남 학자들의 학문적 업적이 얼마나 거대했으며 호남 문사(文士)들의 찬란한 업적이 어느 정도였는지, 또는 다른 지역과도 다르게 이렇게 무시당하고 천대받아도 되는 것인지, 다같이 성찰할 일이다.
◇호남 출신 조선시대 문인 즐비
지봉 이수광(1563-1628)은 16세기에 이미 “근래의 시인은 대부분 호남에서 나왔다(‘지봉유설’)”고 말해 호남 문화가 어떤 수준인가를 분명하게 강조했다.
그러면서, 눌재 박상, 석천 임억령, 금호 임형수, 하서 김인후, 송천 양응정, 사암 박순,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 백호 임제, 제봉 고경명 등을 열거해 조선의 대표적 문인들이 모두 호남 출신임을 명확히 밝혔었다.
교산 허균(1569-1618)도 호남의 학자나 문인들을 열거하면서 나라의 대표적 학자들이 호남에서 배출됐다면서 육봉 박우, 신재 최산두, 미암 유희춘, 학포 양팽손, 송재 나세찬, 면앙정 송순, 국재 오겸을 거명했다. 그러면서 국중의 학자로 하서 김인후 외에도 일재 이항, 고봉 기대승, 건재 김천일 등이 있다(‘성소부부고’)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옥오재 송상기(1657-1723)도 이조판서에 대제학을 지낸 학자로서 호남에 인재들이 많았다고 역설했었다.
이런 정확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호남의 학자나 문인들의 업적을 현창하고 그들의 학문과 사상을 이어받아 호남의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다.
이러한 막중한 일에 그동안 우리 지역에서 너무 힘쓰지 않았느냐는 자책감과 질책은 면할 수가 없다.
◇숱한 유품·유물 체계화 절실
영남의 국학진흥원이 쌓아놓은 업적에 탄복만 하고 있지 말고 우리가 손을 맞잡고 호남학 진흥에 대한 기관을 설립하고 연구 환경의 조성에 손잡고 일어나야 할 때가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료는 없어져 가고, 보존과 유지의 어려움으로 귀중한 학문과 문화의 유품이나 유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말 조선 최고의 유학자 노사 기정진 선생의 유품과 유물이 도난당한 때가 오래지 않았는데, 또 어떤 학자의 유물들이 그런 화를 당할지 알 수가 없다.
학문과 문화의 유물과 유품을 유지 보존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도 호남학 연구기관이 조속히 설립돼야 한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그런 일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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