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 풍조에 따른 소외된 인간관계로 고심하는 현대인들에게 지성인들은 해법을 먼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자고 제안한다. 인간관계는 가치관에 바탕하는 것으로 성장기에 바르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다음세대들이 커 나오는 학교 현장은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보다는 학업능력 신장에 주목하는 교육패러다임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친구관계, 사제관계는 학교폭력과 그 대책으로 불안하기 그지없다.

폭력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폭력사슬이 구조화돼도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 사이에서 교사마저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교육적 관계 파괴’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시대 교육관계를 살펴보면 바람직한 사제관계를 되찾을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의 위상을 높이는 통과의례(책봉, 입학, 관례, 가례) 중 입학식을 상세하게 도해한 ‘왕세자입학도첩’(사진)에는 스승에게 예를 다해 왔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왕세자입학식은 만백성의 수범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공개적 국가행사로 진행했다. 성균관의 입학식을 비롯해 향교 등 조선의 교육기관에서 진행된 속수례 의식은 왕세자입학식의 정신을 잘 반영해 전승됐다.

왕세자입학식은 창덕궁에서 성균관까지 찾아가는 과정, 사람을 통해 배움을 세 번 청하고 스승될 박사가 거절하는 과정, 박사의 수락에 따라 속수(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예물)를 바치는 과정, 배움에 임해 엎드려 질문하고 스승이 답하여 가르치는 과정, 배우고 돌아와 조정백관들에게 성군이 되기 위해 열심히 배우겠노라고 무릎 꿇고 다짐하는 과정 등이다.

일관되게 학문과 교육에 대한 숭례와 자신을 낮춰 성심을 다하는 수신의 자세다. 만인지상이 될 왕세자일지라도 스승 앞에서는 책상 없이 엎드려서 배우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조선 최고 학자이기 때문에 소임을 맡았을지라도 “학식이 부족해 도움이 없을까 저어하다”는 겸양의 모습으로 두 번 사양하는 스승을 백관과 백성에게 보여 나라의 모든 교육자에게 수범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 양자가 첫 만남을 통해 ‘공경과 배려’의 교육적 관계를 지속하는 가운데 향학에 매진하는 아름다운 전당을 이뤄 백성을 공경하고 배려하는 성군, 목민관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사회 교육적 관점도 시사하고 있다.

최근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재현 행사가 열려 주목받았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존경받기를 소망하는 교사나 왕세자 대우를 받기를 희망하는 학생, 그리고 모두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까지 왕세자입학식에 담긴 교육전통을 되새겨 볼 일이다.

교육의 전당에 넘쳐나는 훈훈한 인간관계가 사회 곳곳에 단절돼 있는 관계의 끈을 잇는데 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이 또한 민족정신의 창조적 계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서정현 (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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