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사람들이 자아(自我)를 찾기 위한 일환으로 추구하는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 자기만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둘째, 시와 글귀를 머릿속으로 외우고 읊조리는 것이다. 셋째, 땀을 흘리는 육체적 노동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스스로 자신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처해져 있다면 예컨대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다스리고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 보다 훨씬 각고의 노력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헬렌 켈러(1880-1968)는 시각과 청각 중복 장애인이었다.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앤 설리번 선생의 헌신적 지도와 본인의 노력을 통해서 언어적 문제를 해결한다. 이후에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장애인,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강연과 저서를 통해서 용기를 심어준다.

헬렌 켈러가 어느날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마침 숲 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숲 속에서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을 때 무심히 별것 없다고 대답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눈을 가지고 있음에도 실제로 보는 것이 드물다는 사실에 매우 안타까워한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이러한 보고 싶은 간절함과 상상 속에서 쓴 수필이다. 그녀의 맑은 영혼으로 그려본 세상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인간의 가치, 자연의 섭리, 감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헬렌 켈러가 보고 싶었던 사흘간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에는 어린 시절 바깥세상을 활짝 열어준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인 증거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오후에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흠뻑 취하는 것이다.

둘째 날은 일찍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장관을 하염없이 바라볼 것이다. 나머지 일정은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먼저 인간의 진화과정과 지구의 압축된 역사를 알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의 유물을 관람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인간의 영혼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저녁에는 한가로이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싶다.

셋째 날에는, 도시의 아주 번화한 곳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 눈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 모두에 주목하고 있다.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광경들도 있지만, 불행하고 비참한 광경에 눈을 감고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저녁에는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신나는 코미디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내일 당장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소리, 새의 지저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기를,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기를,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보기를, 신체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내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는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결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후회나 아쉬움 따위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지나가는 한시적 삶 속에서 주인공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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