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됐던 바스티유 광장.

7월이 되니 프랑스인 친구와 함께 여름의 길목을 무목적적으로 산책했던 몇 년 전 일이 생각난다. 오랜 세월 파리에 살면서도 파리를 너무 사랑해 떠나지 못하는 그는 가끔 도시의 이곳저곳 숨겨진 매력을 내게 보여주며 열정을 토해내곤 했다. 그와 함께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과 근처에 있는 보쥬 광장(Place des Vosges) 주변을 산보했다. 갑자기 어떤 골목길로 날 이끌고 한 저택을 가리키며, 짐 모리슨(Jim Morrison)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려줬던 그 날 느낀 전율이 떠오른다. 내가 짐이 살았던 저택을 조우한 날은 7월 3일이었고, 공교롭게도 1971년 바로 그날, 바스티유 광장 근처 자신의 집에서 약물남용에 의한 심장마비로 불꽃처럼 사라져갔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20대 초반이었을 때 봤던 ‘도어스(Doors)’라는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는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도어스는 1967년 데뷔한 4인조 남성 록그룹의 이름이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이 이들의 음악 세계를 1991년 영화화했으며, 삶과 죽음,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짐 모리슨이라는 뮤지션의 고뇌를 그려냈다. 짐 모리슨의 음악 세계와 정신 세계,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히피 문화, 애너키즘을 바탕으로 당시의 젊은 세대의 허무주의와 환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음악은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다. 도어스가 보여준 격렬하고 파괴적이며 몽환적인 음악은 당시 나에게 큰 문화적 충격이었으며, 사이키델릭은 중년 나이를 훌쩍 넘어선 지금까지 나의 음악적 취향을 결정짓는 이정표가 됐다.

▶ 시인이 되기 위해 떠난 도시, 파리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혁명의 날, 파리 군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고 그해 11월 철거됐다.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발단이 된 바스티유 습격 이후, 이곳은 공원과 광장으로 계획됐다. 바스티유 광장과 인접한 곳에 있는 보쥬 광장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마레(Marais) 지구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광장으로 부르주아 계층이 거주했던 2개 층으로 이뤄진 주거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와 추리소설을 문학적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벨기에 출신의 작가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 도어스. 출처 https://thedoors-1965-2011.jimdo.com

미국의 록그룹 ‘도어스’의 리드보컬 짐 모리슨이 사망 직전까지 살았던 주택(17 Rue Beautreillis, paris)은 바로 유명한 바스티유 광장과 보쥬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이곳에 가면 짐 모리슨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곳을 보기 위해 찾아온 미국 단체 관광객을 자주 볼 수 있지만 한국 여행객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짐 모리슨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그저 파리의 흔한 골목길일 뿐일 것이다. 만약 짐 모리슨을 알거나 혹은 록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짐 모리슨이 사랑했던 이곳을 방문해 보면 어떨까? 하지만 내부는 공개되지 않는다. 현재 개인 소유의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짐 모리슨은 유대인 지구라고 알려진 마레 지구에 있는 조용하고 햇살 가득한 자신의 아파트를 좋아했다. 그의 주택을 먼 발치에서 봤다면, 시인이 되고 싶어 미국을 떠나 파리에 정착했던 그를 상상하며 그가 사랑한 장소 보쥬 광장도 산책해보자. 그의 흔적을 더 따라가고 싶다면, 그가 종종 들린 카페 레 두 마고(Les Deux Magots)도 좋다. 그가 집 근처 레스토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식사 하고 싶을 때 찾는 곳, 레 두 마고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발상지로 유명한 곳이다. 작가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이 드나들던 곳이며, 프랑스 대문호들이 이곳에서 살롱을 열었다. 19세기 문학가들의 흔적을 느끼며 노천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와 함께 사색을 즐겨 보자. 물론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라 여유로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마지막 숨을 거둔 엘 호텔(L’hotel)도 가 볼 만하다. 짐 모리슨은 그의 친구들에 의해 아파트가 점령돼 있던 5월의 며칠 동안, 오스카가 머물렀던 2층 같은 방에 머물기도 했다.

짐 모리슨이 잠든 아파트 전경. /출처-https://untappedcities.com

광기와 일탈로 문제를 일으켰던 짐 모리슨은 27세의 나이로 아주 짧고 강렬한 삶을 파리에서 마감했다. 그는 파리의 라 페흐 라쉐즈(La Pere Lachaise) 묘지에 묻혀 있다. 여행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그가 잠들어 있는 묘지 산책도 좋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쇼팽(Frederic Chopin), 에디뜨 피아프 (Edith Piaf) 등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 잠들어있다. 짐 모리슨을 추모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묻혀 있는 예술가를 추모하는 많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짐은 그가 죽기 며칠 전, 친구와 함께 이 묘지에 방문해 자신은 나중에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다. 그는 며칠 뒤의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

▶ 선과 악, 천사와 지옥의 경계에서 표류하다

1971년 7월 3일, 벌써 올해로 그가 떠난 지 46년째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이라는 시에서 “인식의 문이 깨끗하게 정화된다면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라고 했다. 짐 모리슨은 블레이크의 ‘인식의 문’이라는 표현에서 도어스라는 그룹의 이름을 따왔다.

보쥬 광장

‘인식의 문’은 프랑스 시인 랭보(Arthur Rimbaud)의 사유와도 흐름이 맞닿아 있다. 랭보의 반항적인 시 세계는 여러 가수에게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탄 가수 밥 딜런은 음악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노래에서 랭보를 이야기했고, 짐 모리슨 또한 자유로움과 사회적 관습으로부터의 해방,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고뇌를 표현하는데 있어 역시 랭보의 영향을 받았다. 록음악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 “나는 반항, 무질서, 혼란에 관심을 느낀다”라는 그의 발언처럼 도어스는 성과 죽음, 반항과 광기를 노래로 표출했다.

랭보와 짐 모리슨, 모두 영원한 이방인처럼 세상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랭보는 스무살이 되기 전 주옥같은 시어들을 남기고 무역 중개인이 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고 자발적 유배를 선택한 짐 모리슨은 시인이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모두 타국에서 죽었다. 그들은 그렇게 닮았다.

짐 모리슨은 자신의 고뇌와 정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술과 약에 취한 강렬한 퍼포먼스를 거듭하면서 점차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됐다. 결국 1969년 마이애미에서 외설적 공연으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971년 그는 도어스에서 탈퇴하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열망으로 파리에 정착했지만, 그해 7월 3일 자택의 욕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짧았던 그의 인생을 관통했던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적 사유는 아쉽게도 ‘인식의 문’을 열지 못한 채 파리에서 표류해버렸다.

▶ 파리, 도시가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

유럽의 많은 도시가 테러 위협으로 여행객들이 줄긴 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여행한다. 그만큼 볼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중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다. 유명한 건축물, 박물관, 전시관, 다양한 예술적 콘텐츠, 쇼핑 등 볼거리와 즐길 것들이 많지만, 파리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사람을 기억하는 도시라는 것이다. 도어스 팬들을 위한 파리 가이드 정보가 구축돼 있을 만큼, 파리에는 이 도시에 머물렀던 수많은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 여행할 수 있는 코스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현대 도시 공간은 지나치게 상품화되고 과장됐으며, 인위적인 미가 넘쳐난다. 도시는 원본은 사라지고 가짜만 남아 있다. 낙후된 마을, 어두운 골목길을 오색찬란한 색으로 치장하고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는 것으로 도시가 재생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소비의 대상으로 포획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파리가 권력과 소비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와 다르게 사람이 관계 맺고 경험이 깃든 장소에 관심을 갖고 이를 기억하는 도시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 수많은 세계인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게 하는 이유다.


오스카 와일드가 머물렀던 호텔, 짐 모리슨이 머물렀던 저택과 그가 스쳐간 여러 장소들은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화돼 여전히 원본의 이미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도시를 물리적 요소들로 이뤄진 공간이 아니라 인간 자체와 그들이 만들고 있는 텍스트로 인식하고 나아가 인간의 경험이 깃든 장소를 인문학적 관심으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이것이 바로 파리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세계인들에게 파리는 단순히 볼 것이 많은 관광 도시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아이콘이며 상징, 텍스트 그 자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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