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왔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 멈추었다.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붐비던 도심의 거리는 썰렁하고 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도 하늘을 날던 비행기도 멈추었다. 세상의 속도가 사라진 것만 같다. 어쩔 수 없이 멈추어야 한다면 잠시 휴식으로 여기련다. 일을 하기 위해서 휴식이 필요하기에. 다만 너무 길게 마냥 쉬고 싶지 않다.

일상에 충실하면서 가끔 붓을 잡는다. 컴퓨터의 키보드로 쉽게 지우고 복사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매번 먹을 갈고 붓을 씻고 있다. 점이나 글 하나 잘못 쓰면 다시 전체를 반복해 글을 쓰면서 왜 이렇게 고생을 할까 하면서도 나름대로 여유를 갖는다.

서예에 입문한 지 10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원하는 만큼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간혹 반듯하게 쓰기도 해서 조형을 이루는 서체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오롯이 정신을 담은 서예는 화선지에서 그려지는 한 편의 시요 예술이기 때문이다.

붓은 혀와 같아서 그 끝에서 나오는 것은 글이요 말이다. 기세 있는 필획은 붓 허리 호심에서 생기고, 붓끝의 필봉으로 그 품은 힘을 토해낸다. 그러나 급한 마음은 잠시 잠재워야 한다. 세상의 위치가 그러하듯 먹물이 번지는 속도에 대한 조바심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붓대는 붓털을 따라야 하건만, 항상 붓털의 움직임대로만 따르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의 몸 또한 항상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과 몸 사이의 부조화를 조율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붓놀림 또한 인생이 아닌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했던 말, ‘느림을 걱정 말고 멈춤을 걱정해라(불파만不 慢, 지파참只 站)’ 말에서 나는 글자 하나의 위치를 바꾸어 ‘멈춤을 걱정 말고 게으름을 걱정하라(불파참不 站, 지파만只 慢)’고 고치고 싶다.

흐르던 물도 잠시 멈추면 더욱 맑아진다. 테니스와 야구와 같은 운동에서도 멈춤이 요구된다. 더 멀리 더 강하게 볼을 치기 위해서. 서예에서도 멈춤이 필요하다. 먹물이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자전거 대신 걷기도 한다. 청소년기와 장년기에 빠르고 거친 운동을 좋아했으니 이제는 부드러운 운동 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삶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여유 있는 생활과 호흡 또한 필요하다. 더 큰 일, 더 먼 길을 가기 위해서.

이왕 멈춘 것, 잠시 쉬면서 돌이켜 보련다. 현재를 살피고 미래로 나아가리. 잘못이 있다면 고칠 것이다. 변해야 한다면 변할 것이다. 손을 씻고 마음도 씻어 청결을 유지하리라. 너무 가깝게 모여 살았다면 거리를 두고 그리워하면서. 도시의 번잡함을 떠나 잠시 시골과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칩거와 묵상으로 스스로 자가 격리도 하면서.

경쟁으로 빨리빨리,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능사가 아님을.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면서,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함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새삼 확인하며 느끼는 것이 있다. 평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그들의 노고와 헌신이 있기에 안심하고 편하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틈을 내 붓을 잡는다. 멈춤을 생각하며 먹물과 붓에 집중한다. 점과 선이 모여 온전한 뜻을 지닌 글이 된다. 어느새 흰 화선지의 공간이 검은 글씨로 채워진다. 셀 수 없는 시행착오와 힘의 강약을 통해 서예를 배우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겨낼 것이다. 그때까지 참고 견디리라. 서로 손잡고 노래하며 웃는 세상이 머지않아 올 것이기에.

<김도희 약력>
▲목포해양대학교 환경생명공학과 교수
▲2016년 ‘한강문학’으로 등단, 광주시인협회 환경살리기백일장 우수상(시)
▲수필집 ‘명태 돌아오라’, ‘자전거 타는남자’, ‘바람소리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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