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월)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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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처음 가는 날이다. 수영복을 입고 모자와 물안경을 착용하려니 쑥스러움이 앞선다. 규모가 큰 수영장은 사람들의 몸동작에 따라 출렁이며 파란 바다를 연상케 한다. 팔순 할머니도 수영복을 입은 걸 보니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풀린 듯하여 한 발짝 다가서진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간단하게 준비 운동을 한 후 목까지 차오른 물속을 걷는다. 물속에서는 다리를 비비 꼬든 허리를 뒤틀든 옆으로 가든 뒷걸음질 치든 아주 자유롭다. 운동하는 모습도 가지각색이어서 빨강 노랑 초록색의 플라스틱으로 된 판을 양손에 쥐고 엎드린 채 물장구를 치며 둥둥 떠가는가 하면 선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뒹굴 듯 물살을 헤쳐가며 빠르게 수영을 하는 이도 있다.
눈을 스르르 감은 채 가만가만 물속을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자못 사랑스럽다. 할머니의 그 미안한 듯한 눈빛이 내 마음속에도 옮겨진 듯, 나도 그런 얼굴을 하고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찜통더위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물속에 몸을 식히니 쌓인 스트레스가 단번에 ‘펑’ 하고 날아 가버린 기분도 든다.
현대의 우리는 문명의 이기로 몸은 편하게 되었지만 여러가지 스트레스 속에 묻혀 살아가고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불안과 긴장이 지속하여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큰 병으로까지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한다.
주부가 건강하면 가정이 건강하고 가정이 건강하면 나라가 밝아지게 되니 그래서 스트레스를 이겨낼 만한 여러 가지 종목들을 문화 센터를 통해 권장해 오지 않나 싶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빨래터에서나 다듬이를 하며 마음속 고통을 이겨냈다고 한다. 요즘엔 힘든 일은 기계에 맡기고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본인의 입맛에 맞춰가며 취미 활동을 하기에 주부들은 늘 바쁘기만 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간이 되었는지 수영복 차림의 날씬한 강사 아가씨가 오색 스티로폼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들어온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풀장 안을 뒤흔드니 축제인 듯 마음이 먼저 들뜬다.
“자 여러분은 그대로 물속에서 저의 동작을 따라 해보세요.”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아쿠아로빅은 시작되고 동작 하나라도 놓칠세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은 흡사 청순한 어린아이들과 같다. 스티로폼을 손에 쥔 채 따라 하는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너무도 힘이 들지만, 헤엄치다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기분에 체육센터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몇 개월 간의 회원권을 사 수영장으로 들이민 딸아이가 고맙기만 하다.
가느단 봉을 손에 쥐고 뒤로 넘기는가 하면 앞으로 당겼다가 물속으로 집어넣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더니 이번엔 다리 사이에 끼고 자전거 타기를 하란다.
‘오마나, 내 이 무거운 몸이 물에 뜨네. 호호 그렇담 책 표지에 쓰인 물 위를 걷는 여자도 스티로폼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을까!’ 손과 발을 움직여 자전거를 타고 물속을 종횡무진하니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며 옛 어른들이 자주 쓰던 말대로 오늘은 나도 학을 탄 양주 목사다.
운동 시간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명상의 시간이라 하여 봉을 목에 두르고 물 위에 누우라며 조용한 음악을 보내준다. 모든 게 서툴기만 한 나는 몇 번이고 자맥질하다가 간신히 누워 흐르는 선율에 젖어본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편안함이 없어 마음이 울컥해진다. 취미생활이라는 단어조차도 모른 채 오직 일만을 하다 가신 어머니의 등 굽은 모습이 아프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 누구 미운 사람 없나요? 속 썩이는 남편, 말 안 듣는 자식들, 또 잔소리하는 시엄니 호호, 하하! 모두 일어나서 봉을 구부려 높이 들고 맘껏 물을 쳐보세요. 하나, 두울, 세엣! 스트레스를 확 푸세요. 더 두드려요. 더 쎄게요. 다섯, 아홉 열! 여러분 사랑해요!”
그렇게 아쿠아 운동이 끝나고 함박꽃처럼 웃는 모습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뿐하기만 하다.
<윤영자 약력>
▲‘수필과 비평’ 등단(1997)
▲‘오늘의 가사 문학’ 신인상
▲전남문학상, 한국 여성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 ‘윤이나네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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