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9(수)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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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딱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책이 좋아 책과 가까이 했을 뿐이었다.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특유의 종이냄새도 좋았다. 책들이 가득 꽂아 있는 책장 사이에 자리 잡고 숨을 흠뻑 들이마시면 세상을 다 얻어내는 기분이었다. 책속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내 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와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노랗게 바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풍기는 퀴퀴한 냄새는 과거로 떠나는 여행 같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책 속으로 들어가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웃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설록 홈즈에 빠져 있을 때는 일상의 소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해 실마리를 찾아다니는 명탐정이 되었고, 백설공주에 빠져 있을 때는 독이 든 빨간 사과보다는 일곱 난장이들이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킬 대로 엉킨 것 같아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특별히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복잡한 것들이 글쓰기를 통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서둘러 종이와 펜을 찾았고, 그냥 무조건 써 내려갔다. 딱히, 뭘 써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써지는 대로 한자 한자 적어 내렸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했다. 펜을 놓는 순간,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뒤죽박죽 엉켜있던 것들이 깨끗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눈을 감고 자리에 누워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꿈이었나?”
아침에 일어나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새벽에 일어나 종이에 뭔가를 적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방 한 쪽에, 줄도 맞지 않은 삐뚤빼뚤 글씨들이 적혀있는 종이와 펜을 보고서야 꿈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뭐 하나 읽어 줄게.”
나는 삐뚤빼뚤 글씨들이 적혀있는 종이를 들고 남편에게 다가가며 말했고, 내가 글을 읽는 동안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아침부터 무슨 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쓴 글이 시라고?’ 나는 숨이 탁, 멈추는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질어질 한 것도 같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맑고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도 같았다. 새로운 기운들이 휘몰아치며 나를 감싸 앉은 것도 같았고, 하늘 높이 방방 뛰어오르는 것도 같았다. 뭉개 뭉개 하얀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는 것도 같았다. 한마디로,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환희와 기쁨, 가슴 벅참이었다. 남편의 한마디 덕분에 글을 쓰게 됐고, 글을 쓰는 행복을 얻게 됐다.
얼마 전, ‘나도 작가!’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나주공공도서관을 통해 2021 상반기 학교 연계 독서인문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되고 있는 ‘나도 작가’ 프로그램은 교과 연계 도서 및 주제 도서를 읽고 글쓰기를 비롯해, 생활 글쓰기 및 대중문화와 접목한 글쓰기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글쓰기를 통해 표현해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고 사고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렇듯 글쓰기는 우리의 생각을 구체화 할 수 있고 표현해 내며 말끔히 정리 할 수 있어 좋다. 머릿속 가득 뭔가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가도 글을 통해 비워내고 나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 되는 것처럼, 마음의 비움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일상이 답답한 요즘.
‘나도 작가’와 같은 프로그램이 좀 더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함께 하는 글쓰기를 통해, 마음 속 답답함을 풀어내고 비워내는 시간들이 됐으면 좋겠다. 특별히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한 프로그램 보다는 한 자, 한 자, 마음 속 글쓰기를 통한 비움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됐으면 좋겠다. 처음엔 한 글자 쓰기도 머뭇거리며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을 통해 표현해 내며 함박 웃던 웃음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쓰기를 통해 비워내는 만큼, 우리의 가슴 가득 봄의 향기가 스며들 수 있도록. 이 좋은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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