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비 오는 날 동적골’은 비 내리는 오후에 우산을 쓰고 동적골에 간 시인의 시심이 펼쳐진다. 정자에 앉아 추억에 잠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와 사람과 얘기하듯 도란거린다. 비는 속절없이 쏟아지고 우산으로 단도리한 시인의 마음까지 젖어들고 시인의 프리즘에서 창작된 한 편의 시가 수채화를 보는 듯 선명하게 읽힌다. 동적골 가는 길은 사철 가리지 않고 오가는 발길들이 북적이지만 비 오는 날이니 인적이 드물었을 것이고 시인은 모처럼 우산을 친구삼고 따라오는 추억과 거닐면서 친구 같은 시 한 편이 세상을 향해 걸어 나왔다.

▲시 ‘누수와 방수’는 웃음과 울음이 한 짝이듯이 누수와 방수도 한 짝임을 노래한 작품이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많은 숙제는 비슷한 말과 반대말 찾아오기였다. 누수와 방수가 반대말인 것은 엄연하나 시인은 반대말을 친구로 변환하는 능력 또한 갖췄다. “방수가 이마에 땀을 닦고 활짝 웃으면 누수가 눈물을 뚝 그친다” 의 표현에서 반대말을 친구로 바꿔놓는 시인의 시선이 흥미롭다. 시인은 샘과 우물의 여신 코벤티나를 객관적 상관물로 끌어내어 누수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가지만 마지막 연 “누수와 방수는 서로를 농락하면서도/기어이 짝이 되어 함께 논다”는 결말을 보이며 적을 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친구로 승화시키는 솜씨를 보인다.

▲시 ‘침묵’은 침묵의 인간적 의미를 노래한다. 이 시편에서 시인에게 침묵은 “세상에 버려진/ 너의 언어”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는 귀가 없다면 그 말은 존재하지 않거나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결국 침묵이 되어 잠기는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말이 없음을 넘어 세상에 버려진 언어, 즉 무관심으로 내쳐진 언어를 듣고자 한다. “귀 기울여보고 싶다”의 시구에 시인의 의중이 함축되어 있고 아무도 듣지 않고 버려진 안쓰러운 언어에 귀 기울여 종국에는 너의 말을 주검에서 살려내어 “지친 영혼의/ 판타지가 되게”하고 싶다는 것이 시인의 시적 궁구이다. 시인의 맑은 시심이 돋보이는 시편이다.

▲수필 ‘차 한 잔 하고 가세요’는 좋은 사람과 차 한 잔을 나눌 때의 가슴 훈훈함을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고 가세요!”가 “나는 너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쁨 중에는 주는 기쁨도 있지만 받는 행복도 있는 것이니” 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마다 사람에게 느끼는 것은 각각 다를 것이나 분명한 것은 신뢰하는 사람이 같이 만나는 것이 행복이란 것”과 “차 한 잔 하고 가세요!”/너무 아름다운 말이다./너무 행복한 말이다. /언제나 듣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다.”등등의 구절들을 옮겨 적으며 작가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무지개처럼 읽히는 자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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