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열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광주유학대학 학장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로 문자(文字)를 드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뒤이어 종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우리의 기록문화는 급진보 하게 되었고, 이는 우리의 삶 전체에 혁신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여기에서 역사(歷史)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 국가들 가운데 ‘기록문화’의 우수성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능가하는 곳이 많지 않다고 할 만큼 우리의 기록문화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기록문화가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데에는 1997년에 국보 제151호인 조선왕족실록(朝鮮王朝實錄)이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우리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난중일기(亂中日記), 동의보감(東醫寶鑑) 등과 함께 근래에는 광주5·18관련기록물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기록물들을 꾸준히 등재시켜 현재에는 모두 16개의 유네스코 기록유산을 보유한 기록문화의 선진국이 되었다.

이 가운데 조선 태조(太祖)에서부터 철종(哲宗)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 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그 방대성, 체계성, 객관성, 원본(原本)의 보존 등에 있어서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뛰어난 기록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자칫 병란(兵亂)에 휩싸여 유실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우리 호남의 미관말직(微官末職) 관리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임진왜란 당시 전주(全州)의 경기전(慶基殿) 참봉(參奉) 오희길(吳希吉)이다. 경기전은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시는 곳으로, 참봉은 그곳의 부책임자로 종9품(從9品)직이니 지금으로 치면 9급 공무원에 해당되는 자리이다.

그러한 그가 1592년 임진왜란에 당하여 왜군들이 호남의 수부(首府)인 전주를 함락시키기 위해 금산(錦山)까지 진격해 오는 상황에서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 등과의 회의에서 자신의 책무인 태조 어진과 함께 왕조의 역사기록으로 전주사고(全州史庫)에 보관중인 ‘조선왕조실록’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장소를 물색키로 하였다.

오희길은 무사(武士) 김홍무(金弘武), 수복(守僕) 한춘(韓春) 등과 함께 최적의 장소를 찾은 결과 정읍(井邑) 내장산의 은적암(隱寂庵)과 용굴암(龍窟庵)으로 결정하였다.

마침내 그해 6월 왜군이 전주를 압박해오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어진과 실록의 운반을 서두르는데 관원(官員)인 오희길 외에 지역의 유사(儒士)인 태인(泰仁)의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錄)이 그 임무를 자임하였다.

이 두 사람은 사재를 털어 실록과 어진을 옮기고 지키는데 최선을 다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의(당시 64세)는 227일, 손홍록(당시 56세)은 196일을 집안일을 팽개친 채 산속에서 수직(守直)하였다.

본관이 나주(羅州)로 나성군(羅城君) 오자치(吳自治)의 후손인 오희길은 부친이 고창으로 이거(移居)하였으나, 24세 때인 1579년(宣祖 12年) 집터가 향교를 짓는데 좋은 곳이라며 매도를 청하자 흔쾌히 기부하고 누님이 살고 있는 순창군 금과면으로 이거하였다.

왜란이 수습된 후 어진과 실록을 지켜낸 공으로 1615년 1월 태인현감(從6品)에 제수되었으나 6월 무고로 체직되었고, 1616년 8월 허균의 무고로 거제도로 귀양가 1625년(仁祖 3年) 그곳에서 70세로 사망하여 순창군 금과면에 묻혔다.

우리의 위대한 기록문화유산을 지켜낸 업적과 요즘 사라져 가는 애국정신을 고려할 때 그의 묘소는 충분한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으며 나아가서는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북도 순창군에 속하지만 담양군 금성면과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그의 묘소에 대해 우리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으며, 이러한 일들이 결국 애국·애족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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