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3(목) 09:29
|
통계로 증명된 재난, 코로나가 남긴 ‘사적 부채’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자영업자들이 짊어진 빚의 상당 부분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정부의 방역 지침에 협조하느라 영업을 포기해야 했던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위해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숫자로 드러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천112조 7천억 원에 달한다. 3년 새 300조 원 넘게 폭증한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채의 질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178만 명에 달하며, 이들의 대출 잔액만 744조 원에 육박한다. 소득으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 자영업자’는 40만 가구를 넘어섰다.
연체율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31%로 11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의 연체율은 8%에 육박하며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에 가깝다. 지난 한 해에만 95만4천개의 업체가 문을 닫았다. 하루 평균 2천600여 개의 가게가 사라진 셈이다. 이는 통계가 아니라, 95만 가구의 생계가 무너졌다는 명백한 사회적 재난의 증거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은 정부가 직접 GDP의 10%가 넘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현금을 지원하고 임대료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빚을 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달랐다. 직접 지원 대신 ‘대출’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했고, 이는 국가가 져야 할 빚을 고스란히 개인과 자영업자에게 전가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자영업자 부채는 이들의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실패가 남긴 청구서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국가의 책무를 묻는다
채무조정은 시혜나 자선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또한 국가는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재난 앞에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그 고통을 방치했다면, 국가는 헌법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전가한 부채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져가는 국민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 이행이다. 이는 ‘퍼주기’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개인에게 떠넘겨졌던 부담을 국가가 다시 책임지는 ‘정상화’ 과정이다.
세계적 석학의 통찰과 선진국의 경험
위기 극복의 해법은 명확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과 경기 침체가 심화될 때, 정부는 부채의 덫에 빠진 이들을 구제하고 재기할 기회를 주어야 경제 전체의 회복력이 높아진다”고 역설했다. 그의 통찰은 국경을 넘어선 진리다. 국내 석학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역시 “한계 상황에 몰린 서민과 자영업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불안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며 채무조정을 통한 연착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금은 행동할 때, 더 이상 주저해선 안 된다
물론 채무조정 과정에서 고의적 불이행자는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일부의 가능성 때문에 전체를 구제할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성실 상환자에 대한 역차별 우려는 저금리 대환대출 등 별도의 지원책 강화로 해소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붕괴는 골목 상권의 소멸, 대규모 실업, 내수 기반의 총체적 붕괴로 이어지는 도미노의 시작이다. 무너지는 경제의 근간을 외면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즉각적이고 과감한 행동이 필요할 때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브라질 룰라대통령)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