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을 지나 일주문을 거치고도 한참 동안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에 스님이 정진하던 법당이 있다. 인적이 드물고 산중 나무와 짐승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사철 꽃들이 피었다 지고 새소리 울려 퍼지는 산 중턱에 숨어든 듯 외딴곳이다.

한 발 한 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세상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어 가난해지려던 스님이었다. 가슴속에 간직했던 사연들은 앞뜰 후박나무 잎사귀에 매달아 놓고 그 나무 아래 바둑판 크기만 한 땅속에 묻혀 말이 없다.

선물 받았던 난 한 분 방안에 놓고 출타를 하셨던 스님은 생명체인 그 난이 마음에 걸려 애를 태웠다니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아끼는 마음 가득하셨다. 가난하지만 정신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 거추장스런 욕심은 저만치 밀어두신 분이셨다. 졸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대나무 끝을 날카롭게 깎아 자신을 곧추세웠던 스님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가며 힘들고 외로운 수행을 이루었다. ‘도道가 말에 있지 않고 행行 하는 데 있다’는 걸 실천하신 스님은 가난한 삶 속에서 지혜를 얻어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 되었다. 그지없이 당당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향기로 남기고 이승을 떠나셨다.

스님의 암자 토방에 세월을 빠져나간 주인 대신 낡은 나무 의자 하나 남아있다. 팔뚝만 한 나뭇가지를 잘라 뚝딱 못 질을 해 만든 투박한 의자이다. 오래된 의자의 나무껍질은 검게 변해 변색되었지만 그 모습은 스님처럼 의연하다. 그곳에 홀로 앉아 지친 몸을 기대며 편안한 휴식을 취했을 터, 나무 형상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자가 고맙기 그지없다.

스님은 그곳에서 해 질 녘 산빛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마음 안으로 귀 기울였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둥근 달을 벗 삼고, 향기로운 섬진강 매화 향을 맡고, 김홍도를 떠올리며 파초 잎에 눈길을 주었던 일들이 바로 그 의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 숲을 내려다보며 스님은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어떤 다짐을 했을까? 비바람과 눈보라 치는 날, 의자를 마루에 올리며 애상에 젖지는 않았을까? 스님의 세월을 품은 의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듯하다.

나이 들어 나도 빈 의자를 남기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욕심 찌꺼기를 붙잡고 뒤척이는 날들이 많은 나는 번뇌의 그물을 비켜 가는 지혜가 부족하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내 안에 자리할 꽃잎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숙한 삶은 살고 있지만 스님의 삶을 들여다보며 어느 한 곳이라도 닮아보려 애써볼 일이다.

<송미심 약력>
▲‘한국 수필’ 등단(1997)
▲무등수필문학회, 광주문협,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광주예총 예술문화상 특별 우수상(2016)
▲23회 광주문학상 수상
▲‘여덟 봉우리에 머문 눈길’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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