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문학평론가 /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장

어느덧 2021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올 한해 일상적인 대화 가운데 가장 많이 나눴던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언제 식사나 한번 합시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나눴던 사람과의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은 듯합니다. 그저 인사치레로 주고받은 게지요.

나 또한 그 말을 헤아릴 수 없도록 했을 테고, 수없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지인과의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습관처럼 “조만간 식사나 한번 하시지요”라고 했으니까요.

최근 재밌는 한 설문조사 결과를 접한 적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지인에게 가장 자주 하는 ‘빈말’이 무엇일까를 묻는 것이었는데요. 그 설문조사에서 1위는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이렇듯 한국인이 말하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지키지 못할 대화는 이제 일상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아주 가까운 지인끼리 주고받는 매우 친밀한 대화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술과 밥을 함께 먹으면 친해진다는 속설도 이런 이유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는 가운데 주고받는 대화들이 서로의 심중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밥 한 끼를 쉽게 이해하려면 함께 머리 맞대고 자리하다 보면 그 어떤 난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기에 식사 한 번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둔 응어리도 쉽게 풀어내는 민족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마움의 표시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어느 학자가 내놓은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식사 도중에 알게 된 다른 사람이나 이야기에 특별한 호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결정을 좀 더 빠르고 충동적으로 내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식사가 중요한 교류의 수단으로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언제 식사 한번 합시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입니다.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지만 기분 좋을 때가 더 많습니다. 친한 관계는 아니지만, 상대방이 내 호의에 감사함을 표시한다는 뜻으로 가볍게 받아들입니다. 그 말속에 밥 한 끼 같이 하고 싶을 만큼의 진심을 느낄 때는 더욱 뿌듯합니다. 함께 식사하고 싶다는 것은 이처럼 훌륭한 소통의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 말이 인사치레란 걸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먹는 일을 해보자는 말의 배후에는 따뜻한 인간미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사실 먹는 일보다 소중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도 밥 먹는 일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 “밥 한번 먹자”라는 말속에는 더 친해지고 싶은 관계 유지와 나눔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 친함의 방법 중에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속도를 줄여주는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빈말이 곱씹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이 현실의 인사치레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누가 언제 사겠다는 말도 없이 기약 없는 공수표가 되어 가고 있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때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해놓고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자는 사후 대책도 없는 일이 인간관계의 한 요소로 자리 잡는 것 같아서입니다.

누구나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끝으로 다시 만나지 못한 관계도 더러 있었을 것입니다. 더는 친하기가 어렵거나 관계 유지가 싫을 때 밥 한번 먹자라는 말로 마무리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나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2021년을 보내면서 크게 반성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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