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6·25 직후 빈곤으로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슬프다,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살았다. 하늘이 나의 환상이고 나의 도화지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늘은 나의 꿈을 그림으로 펼치는 도화지였다. 거기에 내가 품은 꿈을 많이도 그렸다. 구름천사와 그렇게 재미나게 놀다 학교에 입학했다. 반공포스터를 그리라고 했다. 반공포스터는 구름천사와 사뭇 다른 그림이었다. 그 괴기스러움은 결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미술반에 들어가니 잘 그리기 경기장이었다. 극장 간판 아저씨도 미술반 선배님들도 모두 잘 그렸다. 길거리 라디오 수리점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노랫가락들도 정말 훌륭했다. 이러구 저러구 살다가 직장에서 퇴직했다. 사는 게 더 재미있다. 다른 사람과 다툼이 없고 멋대로 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그리고 그림만 그리는 일이 정말 좋다. 세상 모든 것들이 법과 원칙을 따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림은 속된 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라서 더더욱 재미있다.

개성 중시는 그림의 특성이다. 미술인 모두가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모든 점에서 재미있는 일이다. 아마도 화가는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하늘이 내린 천상의 직업이다. 그러나 화가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화가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화가가 살아온 모든 것이 붓 끝에 묻어난다. 그런 작업과정에 타인에게 대작을 시키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화가는 설계사와는 다르다. 자신이 설계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설계대로 그리고 만들고 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림은 정말 재미있는 놀이다. 나는 그림이 재미없는 일이었다면 누가 죽인다 해도 안했을 거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하다가 가고 싶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양과동에서 그림쟁이 노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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