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요즘, 사회적 언어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습관처럼 말을 반 토막으로 쪼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른바 상대의 기분 상태를 헤아리지 않고 내뱉는 ‘반말’이다. 사전학적 측면에서의 반말은 ‘말을 쪼갠다’라는 뜻 외에도‘말을 나눈다’, ‘말을 자른다’, ‘말을 가른다’, ‘말을 찢는다’, ‘말을 깐다’, ‘말을 놓는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반말 문화’가 근래 들어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전반에 걸쳐 고착된 것 같다. 언어는 자기 자신을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인데, 본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망각한 채 ‘반 토막말’과 ‘손가락질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눈만 뜨면 ‘길바닥 언어’를 듣고 살아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어떠할까.

어찌 보면 반말 문화는 사회적 관계만이 아닌 신분 차이에서 비롯한 잘못된 관행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몇 가지의 잣대로 상대를 반말의 대상으로 단정 짓기 때문이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자신들보다 지위가 낮다는 것이, 노동자라는 것이, 가진 게 없다는 것이, 학력이 낮다는 것이 반말을 들어도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간혹 반말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최종결정은 자신이 한다. 몇 가지 잣대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물론 반말이라고 무조건 기분 나쁜 건 아니다. 친구나 가족이나 연인끼리 하는 반말은 당연하고 정겹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내게 하는 반말도 기분 나쁘지 않다. 문제는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 특히 사회지도층이 거리낌 없이 쓰는 반 토막말이다. 그렇다. 반말을 사용해서는 안 될 상황인데도 반말을 쓰는 건, 자신의 무지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꼴이다.

그렇다면 왜 존댓말을 써야 할까. 반말과 달리 존댓말은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인물이나 청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쓰는 언어 표현이다. 경어(敬語) 또는 높임말이라고도 부른다. 자신보다 청자가 나이가 많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경우, 혹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분이 없는 경우 쓰게 된다.

존댓말은 여러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나 특별히 아시아권에서는 비중이 상당히 큰 언어습관이다. 과거 왕들도 자신보다 나이 많은 신하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 많은 신하가 나이 어린 왕에게 반말했던 건 아니다. 상왕이 아닌 이상 왕의 생모나 생부, 대비조차도 왕에게 존댓말을 했다.

우리나라 존댓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표현은 일본어에도 있지만, 우리처럼 그 쓰임새가 다양하게 세분된 언어는 아니다. 일본어에서의 존댓말은 친밀감과 계급을 척도로 해서 나누지만, 우리는 직급이나 나이에 따른 구분을 바탕으로 한 상하 수직관계 설정의 도구로 사용된다. 외국인들이 우리 말을 어려워하는 이유다.

낯선 관계에서 반말이 사용될 수 있다는 건 사실 특이한 일이다. 대개 격식 없는 말이란 상대와 가까워서 허물이 없기에 쓸 수 있는 언어다. 낯선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하기 조심스럽고 어렵기에 말의 신중함은 더할 나위 없다.

낯선 이에게 반말을 내뱉는 행동, 그것은 단순한 교양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본다. 사회의 가치와 인간의 차별 없는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존중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으며, 그것이 근대의 혁명과 민주주의를 이끈 힘이었다. 존중과 평등의 정신은 좌파냐 우파냐에 관계없이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가치이며 사회의 근간이다.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천부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게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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