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고향집 앞 산자락 논배미에는 초여름밤 개구리 소리가 가득했다. 어머니가 구십평생을 살아오신 고향집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 방문을 슬퍼하듯, 슬픈 울음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잠겨있던 대문이 활짝 열리고 불도 켜진 것을 보고, 논일을 마치고 지나던 월산아짐이 들어와 어머니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우셨다. 우리 모두 애써 울음을 외면하며 최후의 만찬같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며느리와 딸들이 냉장고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흔적도 깨끗하게 지웠다.

무너져 내린 돼지막 앞에는 토마토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올해는 더 자주 올테니 토마토를 심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력이 쇠하여 눈도 못뜨고 계신 어머니 곁에 앉아 계속 말을 시켰다. 토마토는 어떻게 사오셨나고 했더니 요양보호사 아줌마에게 부탁해 사다 심었다고 힘들게 몇 단어를 말씀하신다. 아직은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며 답을 하신다. 말을 듣지 않는 몸뚱아리,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잠자듯 누워 무슨 생각을 하실까? 천년 세월 그저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집앞 피야골산처럼 이젠 아쉬움도 슬픔도 모두 떨치고 산과 하나가 되고 있다.

어머니께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하고 선물도 보내시던 영산 스님께 연락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분의 목소리를 들려드렸다. 그분은 내 당숙뻘 되는 분이다. 할아버지 여동생 즉 고모할머니 독자 아들인데, 지나던 스님이 아이 명줄이 짧다며 출가시키면 오래 살 것이라고 해서 어린 아들을 출가시켰던 모양이다. 그 일로 할아버지는 대로하셨다고 한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이 다른 유명한 스님들을 모셔와서 묘자리도 잡고, 49일째 되는 날에는 국가무형문화재를 초대해 천도재를 거하게 올려드렸다. 너무 잘 모시는 바람에 아버지 혼백이 영영 떠났는지 꿈속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며 어머니께서 원망 아닌 원망도 하셨다. “형수님…” 세속을 떠난 지 오래된 스님께도 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형수님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어머니는 목 안에서 우물거리는 몇 마디 반응만 보였다. 스님 본인도 중풍으로 고생 중이라면서도 하안거 마치면 찾아뵙겠다고 하신다. 근처 태안사나 진주 쪽 사찰에 계실 때에는 두어 번 어머니 모시고 찾아뵈었는데, 멀리 강화도 쪽으로 가신 바람에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어머니 원을 풀어드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딸 일곱에 아들 하나를 둔 이라리떡집은 아이들이 겨우 초등학교만 마쳤어도 모두 시집 장가 잘 가서 부모님께 논밭을 사줘 부자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이면 자식들이 잔뜩 모여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신나게 논다며 늘 부러워하셨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너무 잘 키운 탓에 딸들은 멀리 서울에, 아들들은 주말에도 자기 일에 바빠서 함께 모이기가 힘들다. 이번 어머니 생신을 맞아 잘 키운 오남매 부부가 모처럼 고향집에 모여 어머니 원을 풀어드렸다. 왁자지껄 떠들며 집을 치우고, 마당에 풀을 뽑고, 저절로 드러난 양파를 수확하고, 마당가 앵두도 딴 후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소리에 이끌려 어머니도 생각 속에서는 환히 웃으며 우리 곁에 앉아 함께 신이나 계실 것이다.

어머니가 계신 곳이 고향이다. 어머니 가시면 고향도 사라진다. 텃밭 가장자리 옥수수 순에는 어머니가 올려놓은 거름이 아직도 보인다. 무너진 돼지막, 텅빈 닭장, 장독대와 감나무, 텃밭에 심긴 고구마 감자 들깨 가지, 폐허가 된 아래채, 모두 모두 정겹다. 오래된 물건을 버리며 사진으로 남기듯, 어머니가 계시는 순간의 고향집 모습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다. 어머니와 함께 한 고향집의 모든 흔적들도 이제 눈을 감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어머니의 고향집 방문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 우리 모두 다른 이야기만 한다. 그래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깨어 있는 새벽 내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 수 없다. 나도 지금부터 이별연습을 해야겠다. 2023년 유월 초엿새(음력 사월 열이레) 새벽에 쓴 글을 시월 스무아흐레에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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