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6(일) 16:25
|
<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은 못 A Pool surrounded by Trees>(1665-1670 사이)를 비롯한 네덜란드 풍경화가 야코프 반 로이스달(1628-1682)의 풍경화들은 영국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별것 아닌 풍경화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과 풍경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는 그 이전의 그림들이 실제의 공간을 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공간은 상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삶은 공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덕분에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드러낸다. 공간은 문화의 어머니로서 특별하게 존중돼야 한다. 현대인들의 문화가 점점 더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그런 공간을 파괴하고 무시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그걸 용인하기 때문이다. 용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간은 특별함을 품고 있고, 배태하는 모든 문화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그런 공간의 특별함을 파괴하는 방식에는 자본주의, 세계화 등 거대한 파도들 말고도 광역화와 ‘이름 바꾸기’가 있다. 한국에서의 광역화는 고유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옮기는 방식<정치 경제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흡수하거나 재편하는>으로 진행됐다. 강원도 울진이 고향인 김명인 시인(1946-)은 1962년 경상북도 울진이 된 이후의 지리적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우리가 생각하는 성과 이름의 조합이 아니다. 정확히 풀이하자면 ‘빈치 고장에서 온 레오나르도’다. 이름 안에 공간이 들어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유산이 있었고, 아직도 일부 시골에서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시골 경로당에서 어른들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을 들어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보다도 더 공간적인 이름들로 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임실댁, 강진댁, 순창댁, 영광댁 같은 이름들은 불리는 이의 공간적 배경에 닿아 있다.
외국의 이름들에는 가계, 공간 등 여러 연원이 들어 있다. 12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대가였던 이븐 루시드(1126-1198)는 ‘아불 왈리드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이븐 루시드’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이름이 길수록 문화적 연원이 더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한국인의 작명 방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빈약한 편에 속한다.
한국인의 이름에는 공간적인 연원이 들어 있지 않고 가계의 서열과 미래만이 들어 있다. 그런 때문인지 공간의 이름이나 경계를 바꾸는 일을 너무 가볍게 대한다. 공간의 앞머리를 바꾸는 일은 사람으로 치자면 성(姓)을 바꾸는 일이다. 사람이라면 성을 바꾸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일인데 공간에는 너무 쉽게 허용한다.
김포를 서울에 넣느냐 넣지 않느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 문제가 다루어지는 세태가 참담할 뿐이다. 전적으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측면만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어느 곳에 속하게 하느냐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면만 고려해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개리맨더링(gerrymandering)보다 더 악성이다. 공간의 이름과 경계는 한국의 정당들 이름 바꾸듯이 할 일이 아니다. 밥그릇을 바꾼다고 내용물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공간은 문화의 어머니다. 경계와 이름을 쉽게 바꾸는 방식의 발전 개념을 들이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도시가 속하는 영역을 바꾼다고 해서 삶이 바로 ‘서울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김포라는 공간은 자기만의 문화와 지켜야할 공간적 정체성이 허약하게 존재했던 곳이 되고 만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