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3(일)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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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국내에서는 최초, 세계에선 4번째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에 지정된 도시다. 2014년 선정 이후 미디어아트창의벨트 조성 사업이 5권역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일상 속 익숙한 공간을 미디어아트 문화공간으로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내 미디어아트 관련 정책과 사업이 잇따르는 가운데, 문화현장에서 활발하게 작업을 펼쳐오고 있는 임용현 작가를 지난 14일 그의 스튜디오 ‘이메진팩토리’에서 만났다. 명칭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곳은 상상이 현실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거친 생각들은 근사한 작품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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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남구 월산동에 문을 연 이곳 스튜디오는 디지털 작업 등 주요 업무를 수행하는 작업공간을 비롯해 미디어 조형 작업실, 테스트 및 쇼케이스 전시공간까지 모두 3층으로 구성됐다. 작업과 전시는 물론 미디어 교육 그리고 소규모 행사도 열리는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이다. 컴퓨터 한대로 시작했던 작업은 퀄리티 높은 미디어 수요가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계들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전업작가로 나서기까지 그의 지난 삶은 범상치 않다.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영화사에 들어가 조감독으로 근무했다. 당시만 해도 일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활마저 어려웠기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방송국 PD로 입사했다.
“일도 익숙해지고 여유로움을 찾았지만 뭔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PD로서 정말 기획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제작하기도 어려웠고요. 무엇보다 화면 속 보여지는 게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것, 미디어를 통해 조작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내는 데 회의감도 느꼈죠. 나만의 작업을 하고 싶었고, 또 주위에서 작가로서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라는 조언도 큰 원동력이 됐어요.”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다는 확고한 꿈이 있었기에 일을 그만두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고 영국 런던예술대학교 첼시컬리지에 입학했다.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이때껏 다뤄보지 못한 도구들로 자유롭게 작업을 펼쳐낼 수 있었던 유학 생활은 큰 꿈을 품게 해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갔어요. 모든 게 나를 위해 준비돼 있는 것 같았어요. 내 손끝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눈에 보이니 재밌고 신기하기도 했고요. 재료적인 실험을 많이 해본 시기였습니다. 기존에 다뤄온 매체, 전통적인 방식을 섞은 다양한 시도도 해봤고요.”
작업실에서는 작가가 유학시절 만들었던 작품을 비롯해 그 이전부터 끊임없이 작업해온 방대한 양의 포트폴리오를 만나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다양한 작업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그간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나있는, 보다 발전된 결과물인 셈이었다. 졸업 이후 2014년 한국에 돌아와서 연 첫 개인전 ‘미디어는 무기다’는 그가 지금껏 추구해온 작업관과 결을 같이 한다.
“제 작업 주제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문장인 것 같아요. 미디어는 무기와 비슷해요. 사용자가 그걸 어떻게 쓰고, 관리하는지에 따라 목적이 달라지니까요. 미디어가 사람 간의 관계를 끈끈하게 하거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좋은 도구인지 아니면 미디어가 제공하는 모든 걸 무작정 받아들여 거기에 함몰돼 가고 있지 않은지 질문해보고 싶었죠.”
전시에서 선보인 ‘Dancing on the sea mine’은 겉보기에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위태로운 상태다. 수중 지뢰 위 춤추는 남녀의 모습은 마치 현대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미디어의 위협 속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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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설치작품 ‘Everything is hazy’는 2014년 세월호 당시 방송 매체들의 엉뚱한 보도에 대해 꼬집는다. 커다란 잠수함은 방송사를 상징한다. 엄청난 힘을 가진 잠수함이 대양에 있는 게 아니라 전시장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갈 곳을 잃은 언론과 미디어의 이중성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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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생활하며 낮에는 프로듀서 일을, 밤엔 작업을 이어가는 치열한 일상이 3년 간 이어졌다. 더 이상은 어렵겠다 싶어 삶의 터전이었던 광주로 내려와 전업작가로 전향했다. 준비 삼아 도전한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아트 레지던시에 덜컥 선정돼 본격적인 작업을 펼치게 됐고, 지역내 여러 문화기관 레지던시 생활을 이어갔다.
2018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스튜디오에서의 활동은 작업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중국 현지에서 1년 간 그룹전만 20여회 이상 참여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만큼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폭넓은 시각에서 다양한 사람들, 전시와 마주하며 국제적인 감각도 키웠다.
방대한 작업들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미디어 소비’에 대한 질문이다.
2020년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에서 처음 선보인 2019년작 ‘apple consume’은 12개 영상박스로 구성된 홀로그램 작업으로, 최근 인도네시아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전시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유학시절부터 ‘사과’를 주제로 작업해온 만큼 미디어에 대한 그의 일관된 생각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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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처음 베어 물었을 때 ‘욕망’이 생겨났던 것처럼 우리가 처음 마주한 ‘미디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데서 착안했어요. 핸드폰이나 인터넷 등 미디어를 소비하는 그 순간부터 이를 끊을 수 없는 세상이 됐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작품 ‘달콤한 트루먼’(2021)은 영화 ‘트루먼 쇼’를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감시와 통제 아래 살아야 했던 상황을 모티브로 제작한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눈동자를 닮은 둥글고 커다란 작품 앞에 서면 어느 순간 관객은 자신의 뒷통수를 바라보게 된다. 감시 당하는 나를 내가 다시 바라보는 것. 작품은 누군가 지켜본다는 불안함 속에서도 잘 관리된 안전한 상황 속 살아감에 안도를 느끼는 아이러니한 현대사회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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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라본 광주 미디어아트의 현주소는 어떨까. 작가는 상업적 성격의 미디어아트가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 속 순수미술에 대한 지원이 잇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광주는 미디어아트를 정책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지는 충분해요. 하지만 그만큼 리서치에 대한 의지도 필요합니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선진 사례를 무조건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어요. 지역 상황에 맞춘 조사가 선행돼야 합니다. 미디어아트라는 영역이 엄청 방대한데, 영상 매체 위주로 집중된다는 사실은 아쉬워요.”
그는 무엇보다 작가 양성에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간이나 시설 등 하드웨어 투자는 많이 이뤄졌습니다. 플랫폼보다는 작가가 먼저 있어야 해요. 이제는 작가들에게 투자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굉장히 다양해요. 그런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작가의 예술 특성에 맞는 플랫폼들이 하나둘 더 생겨난다면 다른 도시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생길 거예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도 잇따라야 합니다.”
이와 함께 미디어아트 분야에 발을 내딛는 신진 작가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뭐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작은 규모라도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실패해도 그게 다 경험이 돼 쌓이는 거죠. 그걸 보완하고 다시 개발해나가는 과정을 반복했으면 좋겠어요. 장비나 비용 부분이 부담될 수 있지만 주변 시야를 넓혀보면 빌려 쓸 수 있는 장비, 공간 등이 생각보다 많아요. 본인이 처한 현실 안에서 작업할 수 있는 요소를 조합해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광주가 진정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발돋움했으면 좋겠어요.”
/글·사진=최명진 기자
글·사진=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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