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민 전남대학교 대학원장

1950년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전통적인 농업에 기반해 섬유, 가구, 담배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인당 소득은 전국 48개 주 중 47위에 머물 만큼 경제 상황이 열악했다. 특히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 고급 인재들이 워싱턴, 뉴욕 등 인근 대도시로 떠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주 정부와 지역 대학들은 협력해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을 육성하고 첨단 기업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모색했다.

1959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 State), 듀크대(Duke),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UNC-Chapel Hill)을 중심으로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RTP)’가 조성됐다. 이들 대학이 위치한 랄리(Raleigh), 더럼(Durham), 채플힐(Chapel Hill) 세 도시가 삼각형 형태를 이루는 데서 명칭을 따왔다. 주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 대학의 우수한 연구 역량과 인재를 바탕으로 RTP에 기업과 연구소를 적극 유치했으며, 법인세 감면과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주 정부는 RTP를 통해 지역 대학 졸업자들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며, 경제 구조를 첨단 기술, 의학, 생명과학 중심으로 다변화하고자 노력했다. 기업과 연구소에는 저렴한 부지와 대출, 보조금, 컨설팅, 네트워킹 기회 등 다양한 정착 및 교류 지원이 이뤄졌다. 그 결과, RTP는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구·기술 단지 중 하나로 성장하게 돼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다.

현재 RTP에는 약 370여 개의 연구소와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약 6만 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IBM, Cisco 등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제약, 정보기술(IT),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등 첨단 산업이 활발하게 발전 중이다. RTP 인근 지역의 인구는 2000년 약 119만 명에서 현재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2030년에는 약 2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RTP의 형성과 발전은 지역 대학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업 및 연구소와의 협력이 확대되면서 프로젝트 수와 연구 자금이 크게 증가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교수진과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기업들은 대학과 공동 연구, 인턴십 제공 등 긴밀한 연계를 통해 연구개발(R&D)을 강화했고, 이는 교육과 연구의 질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대학들은 각자의 특화 분야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NC State는 공학, 컴퓨터 과학, 농업 기술에서 강점을 보였으며, 듀크대는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력을 갖췄다. UNC 채플힐은 공공보건, 약학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발전에는 주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연방 정부의 R&D 세금 혜택이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RTP와 유사한 구조로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다. 30여 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2천여 개의 벤처 및 중견기업, 다수의 대학이 함께 입지해 있다. 매년 수만개의 미래형 연구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기관 중심의 구조에 머무르고 있고, 지역 및 대학과의 협력이 충분하지 않으며, 연구 성과의 산업적 환류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향후 우리나라가 수도권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의 자립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RTP 모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해 전략 산업 중심의 연구소 및 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대학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RTP의 성공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과감한 세제 혜택과 재정 지원, 민간 투자 유도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구개발 성과가 제품화와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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