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필 사단법인 광주공동체 상임대표·前 광주시의원

한때 학교는 마을의 심장이었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교문으로 모여들고, 운동장과 교실은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소통의 장이었다. 운동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교실은 회의와 문화 모임으로 가득 찼다. 졸업식, 운동회, 마을 잔치가 모두 학교에서 열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는 점점 높아진 담장과 닫힌 교문 속에 갇혔다.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학교는 아이들만의 공간이 되었고 주민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졌다.

학교는 과연 누구의 공간이어야 할까. 교육은 더 이상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삶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동네 목수의 작업장, 골목의 작은 책방,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가 모두 살아 있는 교육 자원이다. 마을 전체가 아이들의 배움터가 될 때, 교육은 비로소 살아 숨 쉰다. 이를 위해 학교와 마을은 공간과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다행히 많은 학교에는 방과 후나 주말에 비어 있는 교실과 특별실, 운동장이 있다. 이런 공간을 주민에게 개방한다면 학교는 다시 마을의 품이 될 수 있다. 주민은 함께 배우고, 청년은 아이들의 멘토로, 어르신은 삶의 교사로 참여한다. 학부모와 이웃이 함께 기획하는 방과후 프로그램, 세대가 어울리는 문화교실, 청소년과 주민이 함께하는 텃밭 가꾸기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진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변화가 시작됐다. 서울 성북구는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한 초등학교를 ‘마을배움터’로 전환해 주민과 학생이 함께 쓰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방과 후에는 주민 동아리가 모이고, 주말에는 지역 축제가 열린다. 전주시 역시 ‘학교시설 개방 시범사업’을 통해 20여 개 학교의 운동장과 체육관을 주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안전관리를 위해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이용 시간과 구역을 철저히 구분해 운영한다.

해외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 도쿄의 ‘오픈 스쿨’ 제도는 주말과 방학 기간에 학교 체육관과 도서관을 주민에게 전면 개방한다. 이용자 등록제와 출입카드 시스템을 도입해 안전 문제를 최소화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학교가 지역 커뮤니티 센터 역할까지 겸한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은 성인 교육, 예술 강좌, 주민 회의실로 변신한다.

물론 현실적인 장벽은 있다. 학생 안전, 시설 관리, 법적 제약이 개방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출입구를 분리하고, 사용 시간을 제한하며,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지자체와 학교, 주민이 협약을 맺고 책임을 공유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학교가 마을을 품고, 마을이 학교를 지킬 때 아이들은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주민은 다시 공동체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빈 교실 하나, 공유된 몇 시간, 그리고 주민의 따뜻한 참여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작지만 의미 있는 이 ‘열림’이 마을을 되살리고, 교육을 확장하며,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이제 학교를 다시 마을의 중심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교육이 울타리를 넘어 마을과 호흡할 때, 그곳은 단순한 학습의 장이 아니라 세대를 잇고 문화를 키우는 마을의 심장이 될 것이다. 학교 문을 여는 순간, 마을은 더 건강해지고 아이들은 더 행복해진다.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값진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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