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규 전남도립대 교수·한국관광연구학회장

‘2025 명량대첩축제’가 ‘불멸의 명량, 호국의 울돌목’을 주제로 19일부터 21일까지 해남과 진도 울돌목 일원에서 열린다. 이곳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역사의 현장이다. 1597년 칠천량 패전으로 조선 수군은 사실상 궤멸했고,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단 13척의 배를 이끌고 133척의 왜 함선을 맞아 싸워 끝내 1만여 명의 적을 물리쳤다. 이것이 바로 명량대첩이다. 울돌목은 물살이 부딪히며 울부짖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격류의 전투가 펼쳐졌다. 거센 조류와 지형을 활용한 장군의 지략, 병사들의 충성심, 그리고 남도 백성들의 헌신이 어우러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승리였다. 428년 전 백성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일상이었다. 그 꿈을 지키려는 마음과 손길이 장군의 용기와 만나 울돌목의 물길을 승리의 파도로 바꾸었다. 오늘 우리가 명량대첩축제의 현장에서 다시 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명량의 물길은 단지 과거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믿고 연대할 때 기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전국 곳곳에서 이순신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통영의 한산대첩축제는 해양스포츠와 체험이 활발하고, 아산의 성웅이순신축제는 충·효 정신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명량대첩축제는 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실제 전장 울돌목의 현장성이다. 다른 축제가 상징적 공간에서 열리는 반면, 명량은 전투가 벌어진 바다에서 진행된다. 거센 물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승리의 핵심 전략이었던 살아 있는 교과서다. 둘째, ‘절망 이후 수군재건’의 드라마다. 칠천량 패전 직후 겨우 12척으로 다시 일어선 명량의 이야기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희망을 되찾은 인간의 의지와 공동체의 힘을 보여준다. 셋째, 민초와 공동체의 기여가 부각될 수 있는 유일한 축제다. 백성들이 내놓은 곡식과 땀은 수군의 힘이 되었고, 이는 이 승리가 영웅 한 명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든 성과임을 증명한다.

명량대첩축제는 올해로 17년째를 맞으며 이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축제 정체성과 공간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축제가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다 보니 관람객 동선이 복잡하고 체류 경험이 분산된다. 또 바다 위 전투 재현이나 드론쇼 같은 대형 퍼포먼스는 날씨와 해상 안전에 크게 의존해야 한다. 매년 비슷한 연출로 반복되는 디지털 전투 재현은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대안은 분명하다. 우선, 이원화된 개최지를 효율적으로 연계 운영해야 한다. 전투 재현은 축제의 상징으로 유지하되, 민초들의 역할을 반영한 군량미 운반 체험, 공동체 퍼레이드, 민초 장터 재현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해 콘텐츠를 혁신해야 한다. 국제화 전략과 미래 세대 연계도 필수다. 난중일기를 활용한 프로그램, 해외 관광상품 개발, 글로벌 학술포럼 개최를 통해 세계적 역사축제로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명량리더십캠프를 운영하여 위기극복·협력·리더십을 체험하게 하고, 지역민과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아카데미를 통해 기획·운영을 배우는 교육형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마침 축제 개막일인 19일 오후 2시, 해남 126호텔에서 ‘명량대첩축제 글로벌축제 포럼’이 열린다. 이번 포럼은 명량대첩축제를 글로벌 역사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학계와 축제 전문가, 국내외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해 운영 효율화, 콘텐츠 혁신, 국제화, 교육 연계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명량대첩축제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절망 속에서도 모두가 힘을 모아 희망을 만들어낸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는 오늘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메시지다. 울돌목의 물살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위기 앞에서 협력과 연대로 길을 열어간다면, 명량대첩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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