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그 원작 소설 ‘액스(The Ax·최필원 옮김)’가 새 표지로 다시 출간됐다.

미국 추리소설계의 거장 도널드 웨스트레이크(필명 리처드 스타크)의 대표작으로,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블랙유머와 서늘한 서사로 그려낸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언젠가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필생의 프로젝트’로 언급한 바 있다.

프랑스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가 2005년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로 먼저 영화화했지만, 박 감독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동시대 현실을 담아낸 새 버전 ‘어쩔수가없다’를 완성했다.

‘액스’는 199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돼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산업자동화와 구조조정으로 대량 실직이 이어지던 199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정리해고의 폭력성과 중산층의 붕괴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이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제목 ‘Ax(도끼)’는 해고를 뜻하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소설은 제지회사에서 23년간 근무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중산층 가장 버크 데보레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는 처음엔 곧 재취업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2년 넘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진다. 실업수당마저 끊기고, 가족과의 관계도 무너져가는 가운데, 그는 점점 한계로 내몰린다. 결국 버크는 가상의 제지회사를 만들어 구인광고를 내고,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모은 뒤, 그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버크는 자신이 하는 짓이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되뇐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하듯, 그는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합리화한다. 웨스트레이크는 이 서늘한 문장을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비인간적 경쟁과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 붕괴해가는 개인의 윤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얼마나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제도적 폭력이 개인의 일탈로 어떻게 치환되는지 냉정하게 묘사한다.

저자인 웨스트레이크는 범죄와 추리, 사회 풍자를 결합한 독보적인 작가로, 에드거 상을 세 차례 수상하며 ‘그랜드마스터’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필명 리처드 스타크로 ‘파커’ 시리즈를 집필하며 냉정하고 현실적인 범죄 세계를 구축했고, ‘액스’에서는 범죄를 통해 사회 시스템의 불합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도끼’라는 단순한 상징 안에는 일터에서 잘려나간 수많은 삶의 비명과 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광기의 초상이 담겨 있다.

한편 1998년 국내 초판 이후 꾸준히 회자돼 온 이 작품은 출판사 오픈하우스를 통해 재출간본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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