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프레스콜에서 선보인 ACC 개관 10주년 공연 ‘시리렁 시리렁’ 무대. /사진=최명진 기자

강렬한 베이스와 드럼 소리가 극장의 침묵을 깼다. 무대 위쪽에는 두 명의 베이시스트와 드러머, 네 명의 판소리 보컬이 자리하고, 아래층 무대에선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의 댄서들이 리듬에 몸을 맡긴다. 제멋대로인 듯 자유롭지만 그 속에는 묘한 규칙이 느껴진다. ‘질서 있는 난장판’, 제작진이 표현한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선보인 창제작 공연 ‘제비노정기: 시리렁 시리렁(원작 흥보가)’은 전통 판소리의 흥과 해학을 동시대 감각으로 재해석한 무대다. 판소리 ‘흥보가’의 주요 대목 ‘박타령’에서 반복되는 후렴구 ‘시리렁 시리렁’에서 제목을 얻었다.

‘드라곤킹(2018, 수궁가)’과 ‘두 개의 눈(2021, 심청가)’을 잇는 미디어 판소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연출가 양정웅이 의기투합했다.

지난 22일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열린 프레스 공연에서는 이날치의 재치 있는 음악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독창적인 안무가 어우러지며 폭발적인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시리렁 실건 톱질이야’,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등 흥보가 장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창작 가사들이 새롭게 이어졌다. 익숙한 서사 대신 리듬과 몸짓,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등산복뿐 아니라 카우보이풍의 화이트 드레스코드, 군복을 연상시키는 밀리터리룩 등 다양한 의상이 군무와 어우러지며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무대 뒤편 대형 LED 스크린에는 장면마다 다른 영상이 펼쳐졌다. 화려한 빛의 향연에 맞춰 조명과 음향이 조화를 이루며 음악과 춤, 그리고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한층 완성도 높은 무대를 빚어냈다.

70분간 이어진 무대는 감각을 쉴 새 없이 자극했다. 강렬한 리듬과 시각적 연출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전통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서사에 대한 궁금증도 남았다.

연출자가 의도한 ‘리드미컬한 콘서트 형식’이라는 실험은 성공적이었지만, 자막이 없어 노랫말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은 아쉬웠다. 가사와 서사의 결이 조금 더 또렷이 전해졌다면, ‘흥보가’의 풍자와 해학이 지닌 현대적 의미가 공연에 한층 깊게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리렁 시리렁’은 전통의 흥을 새롭게 터뜨린 무대였다. 대형 LED 스크린과 조명, 음향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장면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쳤고, ‘드라곤킹’ 이후 다시 뭉친 제작진이 만든 이 ‘질서 있는 난장판’은 감각과 리듬으로 관객을 압도하며, ACC 창제작 브랜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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