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는 1998년 아시아 최초로 ‘인권헌장’을 선포하고, 2007년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 조례’ 제정, 2011년 세계인권도시포럼 창립 등 인권도시로서의 역할과 인권 증진을 선도해왔다. 하지만 지난 7월 이재명 정부가 역점 시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업과 관련, 선불카드 색상을 소득 수준별로 구분해 사용자의 소득과 취약계층 여부를 노출시키고 말았다. 시민들에겐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신속한 지급을 위해 추진한 일이라고는 하나 명백히 잘못됐다.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대통령이 “즉각 바로잡으라”고 시정을 지시했으며, 시는 임시방편 격으로 공무원을 동원해 스티커를 부착해 통일하고, 카드 자체를 재발급하는 등 혼란이 컸다. 강기정 시장이 기자회견과 SNS를 통해 거듭 사과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는데 전국적으로 체면을 구긴 모양새가 됐다.

이를 계기로 시는 행정 수행 과정에서 미흡하거나 불합리한 인권침해 사례를 전수 점검, 학교 인구교육에서 대안학교 학생을 제외하는 등 불필요한 자격요건으로 특정인을 배제하고, 수도요금 체납 시 단수처분 예고 공문을 주거지 문 앞이나 우편함에 부착하는 등 낙인감을 유발한 사례 등 5개 유형 42건을 발견해 전면 개선하기로 했다. 광주시의회 채은지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이 사전 인권영향평가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채 의원은 “인권은 시민이 갖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지켜야 할 의무이므로 광주시와 산하기관이 ‘인권행정의 주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생 소비쿠폰을 지급하면서 신분 낙인을 유발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행정안전부와 논의가 있었다 해도 책임이 덜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을 구별짓고 차별하며, 또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광주시는 시민 인권 보호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선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인권 영향을 미리 검토하는 사전 평가제도의 필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입사·승진·퇴직 등 공무원의 전 주기에서 인권 감수성을 내재화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 인권도시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높은 광주다. 생활행정 전반의 인권 기준을 강화하고, 일상 속에서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되뇌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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