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일 영정

-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 최초로 거의한 의병장은 나주 출신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이다. 자는 사중, 호는 건재, 본관은 언양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김천일은 1537년(중종 32) 외가인 나주목 동부면 흥룡동(현, 나주시 송월동 흥룡마을)에서 김언침과 양성 이씨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난다.

흥룡동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처 장화왕후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고려 제2대 왕 혜종의 탄생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김천일의 옛집, 즉 부친의 집은 담양도호부 창평현 동면 동촌리(현,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였지만, 외가인 나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나주인으로 불린다.

김천일은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다. 태어난 지 이틀만이 모친 이씨가 죽고, 7개월 만에 부친마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이유다. 그는 15살이 된 1551년(명종 6) 작은아버지 김신침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한 후, 19세가 되던 1555년(명종 10) 호남 일대에서 가장 숭앙받던 학자인 일재 이항의 제자가 된다.

그가 이항의 제자로 들어가기 1년 전인 1554년(명종 9) 김효량의 딸과 결혼했고, 슬하에 두 아들 상건과 상곤, 딸 하나를 둔다.

큰아들 상건은 왕세자를 모시다가 부친과 함께 제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해 성이 함락되자 진주 남강에 투신한다. 둘째 아들 상곤은 부친과 형의 초상(初喪)을 치른 후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부자의 삶이 장엄했지만, 슬픈 가족사가 아닐 수 없다. 딸은 송강 정철의 셋째아들인 정진명에게 시집갔으니, 김천일과 정철은 사돈 사이가 된다.

청년 시절 김천일의 모습은 하서 김인후의 다음 평가가 참조된다.

21살 김천일이 장성 고향에 내려와 은거하고 있던 하서 김인후를 찾아간다. 하서는 “사물의 실제 이치를 터득한 선비를 남쪽 고을에서 보기는 이 사람(김천일)이 처음”이라며 극찬했고, 작별할 때 시를 지어 특별히 격려하고 있다. 후일 하서 김인후는 호남인으로는 유일하게 공자의 신위를 모시는 문묘(文廟)에 배향된다.

- 최고의 목민관이 되다
31살이던 1568년(선조 원년), 사간원 헌납이던 최옹이 “호남에 묻혀있는 선비 김천일은 학식과 품행이 매우 탁월한데도 관직에 서용되는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흠사(欠事, 흠이 되는 일)”라며 추천했지만, 관직은 내려지지 않았다.

김천일은 37세 되던 1573년(선조 6) 삼정승(三政丞)과 이조(吏曹)의 추천으로 관직에 나아간다. 그리고 받은 관직이 종6품직인 군기시 주부였다. 군기시는 조선시대 병기와 군기(軍旗) 등을 맡았던 관아였다.

그리고 그해 용안현감에 제수된다.

용안현은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이다. 그는 3년간 용안현감으로 재직했는데, 재직 중 최고의 목민관이라는 평판을 받는다.

이는 선조가 “현재 고을을 제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자, 이조가 “여주목사 황림, 해주목사 이린, 황간현감 정인홍, 용안현감 김천일”이라고 답한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어 강원도사, 경상도사에 이어 42세 된 1578년(선조 11) 정5품직인 사헌부 지평에 임명된다. 다시 외직인 임실현감에 제수됐다가 순창군수, 담양부사, 한성부서윤을 제수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받은 관직이 수원부사였다.

수원부사 시절 그는 중앙과 결탁한 부호들에 대한 잘못된 세금 및 부역을 바로 잡으려고 애쓰다 오히려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고 만다.

올곧은 목민관의 뜻이 지역의 힘센 부호들에 의해 꺾인 셈이다. 그가 고향 나주에서 임진왜란의 비보를 들은 이유이기도 했다.

- 호남 최초의 의병장이 되다
그는 임금이 한양을 떠나 의주로 파천(播遷)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목 놓아 통곡한다. 그리고 “내가 울기만 하면 무엇 하겠는가? 나라에 환란이 있어 임금께서 파천하였는데, 나는 신하로서 어찌 새나 짐승처럼 도망하여 살기를 원해서야 되겠는가. 내 의거를 하여 전쟁에 나갔다가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면 오직 죽음이 있을 따름이다. 죽지 않고서는 나라에 보답할 길이 없다”며 거의를 결심한다.

이 내용은 ‘창의사 김공 정렬사 비’(倡義使金公旌烈祠碑)에 나온다.

김천일을 모신 사당, 정렬사(나주)

1592년(선조 25) 6월3일, 김천일은 나주에서 송제민, 양산숙 등과 함께 300여 의병을 모아 나주 금성관에서 피로 맹세한 후 북상길에 오른다.

호남 최초의 의병이었고, 최초의 의병장이었다. 6월23일, 수원에 도착한 후 독성산성을 거점으로 삼고 금령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린다. 8월, 강화도로 진을 옮긴 후에도 양화도 전투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다. 이때 의주 행재소의 선조는 그에게 장례원 판결사를 제수하고 창의사(倡義使)라는 특별 직함을 내린다. 그가 임진왜란 중 ‘창의사’란 호칭으로 불린 이유다.

1593년(선조 26),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평양을 탈환하고 개성에 이르러 서울을 공략하려 하자, 막하 부하를 시켜 경성의 형세, 도로 사정, 적의 허실 등을 자세히 기록하여 알린다. 그는 직접 군사들을 거느리고 양화대교 근처의 선유봉(仙遊峯, 양화대교 공사로 사라짐)에 주둔하면서 서울 공략에 큰 공을 세운다.

이여송은 “창의사(김천일)는 명실(名實)이 서로 상부(相符)한 명장”이라고 칭찬한다.

왜군이 서울에서 철수하자 이를 추격하여 상주를 거쳐 함안에 이른다. 이때 명·일 강화가 추진 중임에도 불구하고 남하한 왜군의 주력은 경상도 밀양 부근에 집결, 동래·김해 등지의 군사와 합세해 제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고 호남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제2차 진주성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수성을 포기하라는 명을 내렸고, 도원수 권율과 경상도 의병장 곽재우마저도 진주성을 떠나고 만다.

진주성에 들어왔던 전라병사 선거이마저도 권율의 명을 받고 성을 나간다. 선거이는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물러가서 내면을 지키는 것이 낫다”는 핑계를 대고 성을 나가 운봉에 진을 쳤지만, 진주성이 함락될 때까지 구원하지 않았다.

조정의 반대와 경상도 출신 의병장 곽재우마저 포기한 진주성에 들어간 것은 김천일 등 3천5백의 호남 의병들이었다.

호남 의병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진주성에 입성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호남이 근본이 되고, 호남은 진주에 가까우니, 진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다. 진주성을 비우고 적을 피하여 왜적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계책이 아니다”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창의사 김천일이 6월14일, 3백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에 입성하자 화순 출신인 경상우병사 최경회, 광주 출신인 고경명의 큰아들 복수 장군 고종후, 남원 출신인 충청병사 황진 등 호남 의병장들이 뒤를 따른다.

- 진주 남강에 투신하다
일본군 10여만 명과 호남 의병이 주축이 된 수성군 만여 명과의 싸움은 6월21일부터 29일까지 9일간 지속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김천일과 최경회는 민·관군의 주장인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어 10만에 가까운 왜적을 9일간이나 막아 낸다. 그러나 28일 충청병사 황진이 적탄에 숨지고, 29일 진주성의 한쪽 성이 무너지면서 끝내 함락되고 만다.

성이 함락되자, 창의사 김천일은 아들 상건과 함께 북쪽의 임금을 향해 2배를 올린 후 촉석루에서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다.

김천일은 그를 부축하던 종사관 양산숙에게 “너는 이 사태를 모면했다가 힘써 저 원수들의 섬멸을 도모하라”고 했지만, 양산숙은 “정의에 따라 나 혼자 살 수는 없다”며 함께 몸을 던진다. 최경회, 고종후 의병장도 함께였다.

진주성을 지키다 남강에 투신한 김천일·최경회·고종후를 ‘진주성 3장사’라 부른다.

진주성 함락 소식을 접한 둘째 아들 상곤이 진주성에 도착한 것은 왜군이 진투성을 떠난 이튿날이었다.

상곤은 촉석루로 달려가 부친의 유품를 거둔 후 부친이 남긴 머리카락과 손톱, 어금니를 모아 나주시 삼영동의 내영산(양성이씨 선산) 언덕에 장사지낸다. 형 상건도 함께였다. 그러나 두 분의 무덤은 시신 없이 두 분의 혼을 불러 장례하고 만든 무덤 초혼장묘(招魂葬墓)다.

김천일 무덤

김천일은 사후 1603년(선조 36)에 좌찬성, 1618년(광해군 10)에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된다. 그리고 1681년(숙종 7)에는 ‘문열’(文烈)이란 시호가 내린다.

시호 ‘문열’은 학문에 힘쓰고 묻기를 좋아하셨다(勤學好問)’라는 뜻에서 ‘문’(文)을, ‘굳세게 이겨내고 왜적을 토벌하셨다(剛克爲伐)’라는 뜻에서 ‘열’(烈)을 취한 것이다.

1606년(선조 39), 나주시 월정봉 아래 사당을 짓자, 조정은 정렬사(旌烈祠)라는 사액을 내린다. 흥선대원군 때 훼철됐다가 1984년 현재의 위치(대호동)에 재건립했다.

정렬사에는 함께 순국한 아들 상건과 종사관 양산숙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다.

또한 정렬사에는 한 손은 불끈 쥐고 다른 한 손은 칼을 쥔 채 갑옷도 투구도 없이 나선 창의사 김천일의 동상이 서 있다.

정렬사 사당 내 건립된 김천일 동상

동상 아래에는 “56세의 선비로 붓을 버리고 쾌자(맨소매 옷)만을 걸치고 투구 없는 맨머리로 앞장서니 선생의 충국에 큰 뜻을 따르는 의사가 많았다”는 글귀가 새겨 있다.

진주성 내에 건립된 창렬사(彰烈祠)와 순창의 화산서원, 정읍의 남고서원에도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천일을 모신 사당, 창렬사(진주)

남도 최초의 의병장 김천일, 그가 어떤 분이었는지는, 그가 죽자, 사관(史官)이 남긴 다음의 ‘졸기’(卒記)’가 잘 말해준다.

노성태·남도역사연구원장

“김천일은 이항에 사사(師事)하여 학문으로 명성이 있었으며, 강방(剛方)하고 염직(廉直)하였다. 입대(入對)할 때마다 할말을 다하면서도 임금의 뜻에 맞았는데, 정성을 다해 관직을 수행하여 남다른 치적을 세웠다. 그러나 체질이 허약해 병이 많았는데, 군대 내에서 세월을 지내다 보니 고생으로 몸이 야위어 옷의 무게도 이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나 지기(志氣)가 견정(堅貞)하고, 충성이 분개(奮慨)하였다. 그래서 뭇사람들로 하여금 적과 대치하여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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