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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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천년]제2부 천년의 인물-(8)반계 유형원
이상국가 실현 꿈꾼 조선 후기 실학파 선구자
전북 부안서 농촌생활…경세사상서 ‘반계수록’ 펴내
토지는 국가소유·농민에 경작지 분배 ‘균전제’ 주장
군사·인재등용 개혁안 등 현실문제 대안 제시 앞장

  • 입력날짜 : 2017. 05.30. 19:37
반계 유형원 선생이 서울에서 전북 부안으로 내려와 활동했던 반계서당 유적지./전북 부안군청 제공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부안에 내려와 농촌생활을 체험하고 농촌의 불합리한 점을 점검해 ‘반계수록’이라는 책을 통해 농촌경제의 안정대책을 주장했다.

조선 후기 ‘국가개혁안의 교과서’라 평가받는 반계수록으로 대표되는 그의 개혁사상은 이미 영조대에 인정을 받아 국정 개혁의 지표가 되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 유학자 매천 황현(1855-1910)은 반계 유형원을 가리켜 ‘천하의 재상감’이라 칭송하기도 했다.

반계수록에 나타난 농촌 사상의 특징은 부민부국을 위한 제도개혁이다. 즉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농민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토지제도를 개혁해야 하며, 이를 통해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경작지를 분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위기로 치닫고 있는 농촌을 구제하고 발전시킬만한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최대 목표는 자영농민을 육성해 민생의 안정과 국가경제를 바로 잡자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농민들에게 일정량의 경지만을 나눠주는 균전제 실시였다.

그는 경자유전의 원칙과 균전제 사상을 주장했다.

반계서당 가는길.
그의 대표저서 ‘반계수록’은 모두 26권 13책으로 돼 있다. 내용은 전제(田制)·교선제(敎選制)·임관제(任官制)·직관제(職官制)·녹제(祿制)·병제(兵制)·군현제(郡縣制)·속편(續篇: 언어·노예·의례·기타) 등으로 돼 있다. 반계수록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과 더불어 우리나라 2대 유가경세사상서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저서로 통했다.

조선경국전이 조선조의 제도 개혁과 기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했으며, 성종 때 이룩된 경국대전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반면, 반계수록은 경국대전 등 기존의 법전으로부터 파생되는 폐법은 물론 오랜 인습으로부터 야기되는 폐단을 전면·근본적으로 개혁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저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토지개혁을 실시해 농민에게 최저기본량의 경작지를 확보하도록 하고, 병농일치의 군제개혁을 제안했으며, 부역(賦役)의 균형과 국민균등의 세제를 정리하고 국가 재정을 확립할 것, 농업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공업을 장려할 것,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공거제(貢擧制)를 실시하고, 관아(官衙)를 정비할 것 등을 제안했다.

반계수록은 성리학적인 사고를 넘어 경험주의적 학문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그는 무슨 책을 보더라도 예전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현실적인 여건과 비교해 옛것을 자기스스로 재음미해 해독한 다음 사실과 대조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최후의 세밀한 것까지 연구했다.

이러한 제안에는 그의 이상국가 건설의 이상이 들어 있으며, 영조도 그의 이러한 뜻을 이해하고 1770년(영조46) 특명을 내려 반계수록을 간행하도록 했다.

반계서당 유적지 중 한 곳인 우물터.
군사제도에 있어서도 그는 중앙군(中央軍)으로서 전·후·좌·우·중의 5위(衛)를 두고 각 위에 장수를 둬 번상군(番上軍: 현역군)을 통솔해 궁궐을 지키도록 하며, 각 위에는 각각 5사(司)를 두고 각 사마다 500명의 군사를 둬야 한다고 했다. 각 위는 병조에 직속시키며, 종래의 도총부(都摠府)는 폐지한다고 한다.

상번군(上番軍)은 2개월마다 교체하게 해 한 장수가 위를 전담, 주관할 수 없으며 한 병사가 한 장수에게 오래도록 소속할 수 없게 하고, 각 위장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임금에게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개혁안은 군사력의 집중을 막고 그들의 권세를 제어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인재 등용의 개혁안에는 기존 과거제(科擧制)를 폐지하고 천거제(薦擧制)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제도의 시험과목 중 표(表)와 사(詞)는 공언(空言)에 흘러 문자의 적(賊)이 돼 사람의 심술을 무너뜨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경사가 있어 과거를 시행하면 인심이 들뜨고 풍속이 야박해지고 빈말로 글을 꾸미어 용렬하고 비열한데로 점점 빠져 들어간다고 했다. 또 과거는 짧은 시간에 그 답안만 보고 뽑게 되며 또한 고시관의 부정이 개입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거제를 통한 공거법(貢擧法)은 향당(鄕黨)의 공통된 여론을 널리 채택하고, 평일에 착하고 악했던 사실을 조사해 공명되게 천거하고 많은 사람이 예로써 대우하고 관리의 임명을 보증해 오랫동안 그 사람을 살필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의 과거제도는 고려 광종 때부터 시행됐으나 그 폐단이 드러나 그 보완책으로 고려 중기 이후 천거제를 병행해 왔다.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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