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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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광주정신포럼
철저한 진상규명 통해 5·18 역사 왜곡 바로잡자

  • 입력날짜 : 2019. 05.09. 19:15
1980년대를 관통하는 민주주의 각성과 역사적 전환의 항쟁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하고 계승하는 ‘5·18광주정신포럼’이 9일 오후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렸다. /김애리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았지만 집단발포 명령, 헬기사격, 행방불명자 및 암매장, 성범죄 진상 등을 밝혀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국민통합을 완성하기 위한 전국화 역시 중요하다. 광주매일신문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전국의 5·18들 - 5·18의 현재와 정신계승’을 주제로 9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 다목적강당에서 ‘5·18 39주년 광주정신포럼’을 개최해 5·18이 광주만의 투쟁이 아니라 1980년대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의 각성과 역사적 전환의 항쟁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포럼의 주제 발표 및 토론문을 요약한다. /편집자주

◇참석자
●주제발표=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토론=▲고호석 부산민주항쟁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철원 광주MBC 기자(광주학살진상규명관련 열사 10인의 기록 ‘그들의 광주’ 저자) ▲오성수 광주매일신문 편집국장


주제발표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5·18과 열사들의 투쟁’

대통령의 기념사가 있기까지 5월이면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프랑스 철거민 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샹송에 가사를 붙였다는 ‘5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다.

5월이 오면 우린 여전히 아프다.

19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5월은 투쟁의 달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5월병’을 앓기 시작했다. 투쟁하지 않으면 비겁하고 양심을 저버리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어김없이 5월만 돌아오면 ‘광주’의 사람들은 잠못 이루고 불안했으며, 우울증에 걸리거나 진짜 정신병에 걸리기도 했다. 그런 광주의 5월병에 이제는 우리 모두가 기꺼이 전염됐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말했던가.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광주는 뜨거운 피를 공급했다. 외면할 수 없는 절대 가치였던 ‘광주’ 그로부터 한국의 사회운동은 한 단계 더 도약했고, 큰 전망을 그리게 됐다.

단순히 독재정권의 타도만이 아니라 독재를 물리친 다음 세상과 세대에 대한 꿈을 그려나간 셈이다.

광주는 1980년 고립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5·18단체들을 중심으로 5·18의 전국화를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하지만 광주의 전국화는 광주의 5월 단체들에 의해서기보다는 1980년대서부터 1990년대의 사회운동의 실천과정 속에서 전국화 됐다.

1980년 광주는 외로웠으나, 이후 광주는 외롭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열사들의 투쟁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박종철 열사의 죽음 뒤에 침묵이 따랐다면 이한열 열사의 피격 이후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뒤로 물러섰다면 6월 항쟁도 없었을 것이다. 열사들의 투쟁은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대중의 투쟁과 연결된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미개한 몇몇 의원들의 궤변과 지만원 등에 의해 불거진 사실 근거없는 북한군 침투설이 제기되고 있다. 5·18 진상규명 등의 요구에 대한 광주와 연대하려는 움직임들이 더 거세게 일어나고 있음을 다시 불지피는 셈이다.

5·18의 미해결은 여전한 사회운동의 한 과제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춰 이제는 열사들의 극한적인 저항투쟁은 아니더라도 5·18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연대로 언제고 그렇게 해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광주 5·18의 미해결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발포 책임자 및 헬기 기총사격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공군 수송기로 시신을 다른 지역으로 옮겼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실종자 또는 암매장에 대한 사실을 밝히는 과제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1980년 광주는 극한적인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절대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어떤 중요한 역사적 사건도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고 재조명되지 않으면 화석이 되고 만다. 화석이 된 광주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민주의 성지 광주로 만드는 일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부마항쟁·광주·6월은 불가분의 관계”

고호석 부산민주항쟁재단 상임이사

80년대에 5·18은 외롭지 않았다. 열사들 외에도 많은 이들이 5·18을 알리고 역사적 아픔을 함께 했다. 부산에서도 광주의 참상과 광주시민들의 결연한 투쟁을 알리고 부산시민의 궐기를 촉구하기 위한 노력들이 여러 경로로 진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이 되는 해다. 1979년 10월16일 부산대생들의 교내 시위가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시민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시작된 부마민주항쟁은 17일엔 더 큰 규모로 확대됐고 계엄령이 내려진 18일에도 계속됐다.

18일부터는 마산으로까지 확산돼 위수령이 발동된 후에도 20일까지 격렬히 전개되다 부산과 마산에서는 5일 만에 숨고르기까지 이르렀다. 부마항쟁 때 부산에 투입됐던 3공수여단이 7개월 후 광주에 투입됐고, 권력욕에 혈안이 된 정치군인들의 왜곡된 ‘교훈’을 실천에 옮기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려는 열망이 18년만에 시민항쟁의 형태로 표출된 첫 출발이 부마항쟁이었다. 10·26 사태로 일시 잠복했던 그 열망이 ‘서울의 봄’으로 이어졌다가 80년 5월18일 신군부의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가장 먼저 광주의 학생과 시민들이 떨쳐 일어나 처절하게 짓밟히면서도 참된 민주주의를 생생히 보여준 것이 5·18민주화운동이다.

이렇듯 부마와 광주 그리고 6월은 어느 하나도 따로 떼어놓고 애기 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런 관점을 견지해야 전 국민이 5·18민주화운동에 제대로 다가가 닿을 수 있고, 한국현대사에서 5·18의 위상도 올바르게 정립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광주 위해 희생한 이들 보듬고 챙겨야”

김철원 광주MBC 기자

광주MBC가 기획한 5·18 36주년 특집다큐멘터리 ‘그들의 광주 우리의 광주’는 오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산화한 전국의 이름 없는 시민들을 기억하자는 프로젝트였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포털사이트 다음과 함께 진행한 ‘스토리펀딩’이었다. 당초 기대와 달리 1천만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광주트라우마센터에 기부도 했다.

센터는 이 성금을 민족민주열사들의 유족들과 만나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그들을 광주로 초청해 위로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5·18기록관 광주항쟁 상설전시관에 있는 5·18 역사를 기록하는 부분에서 민족민주열사들의 희생을 배제하고 1980년 5월27일에서 1987년 6월 항쟁으로 건너뛴 것이 아직도 의구심으로 남는다.

또 법조인이나 기업인들에게는 주고 있는 ‘명예광주시민증’을 정작 광주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한 명도 주지 않고 있던 현실 등을 보고 무참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광주 우리의 광주’ 방송 이후 광주시는 이듬해인 2017년 5월 민족민주열사 3인의 유족을 광주로 초청해 광주시민의 날 행사 때 소개하고 시장이 기림패를 수여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림패에 얽힌 사연이 기구했다. ‘공식적인 번호가 부여되는 감사패’를 줄 수 없어 대신 이름도 생경한 ‘기림패’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5·18기록관과 5·18기념재단, 그리고 각종 5·18관련 콘텐츠에서 이들의 희생이 공식화 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도 5·18기념관 상설전시관에 배제돼 있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록하는 일이 절실하다. 더불어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민주열사들의 유족들을 광주가 나서 보듬고 챙기는 일은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5·18 전국화에 전국 자치단체 동참 시급”

오성수 광주매일신문 편집국장

지난 39년동안 5·18민중항쟁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국가기념일 지정, 민주화운동 자리매김 등 나름대로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부족한 부분을 꼽는다면 진상규명과 전국화의 미흡이다.

진상규명은 그동안 수차례 실시됐지만 여전히 진실에 접근되지 못하고 있고 이제 사실상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지난해 이미 출범을 해야 했지만, 정치권의 업무 태만으로 아직도 구성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전국의 5·18들-5·18의 현재와 정신 계승’ 측면에서 본다면 먼저 5·18의 전국화 정착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국 자치단체의 동참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5·18관련 행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자치단체가 아닌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고 있다. 특성상 자발적인 참여는 한계가 있고 또 대부분 1회성 행사로 끝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해당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고 예산이 있는 자치단체가 주축이 돼 시민단체와 함께 각종 문화행사 및 기념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둘째, 광주시민은 좀 더 열린자세가 돼야 한다. 5·18은 더 이상 광주만의 5·18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주에서 그것도 광주시민이 먼저 나서 의연함을 갖춰야 한다. 사실 시민들의 의지와 본연의 뜻과는 무관하게 많은 부분들이 왜곡돼 해석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5·18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역사왜곡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 역사왜곡을 자행한 일부 정치인 및 단체는 여전히 5·18을 광주만의 5·18로 인식하고 있어 큰 책임감 없이 왜곡을 자행하는 측면도 있다./정리=문철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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