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0(수) 23:37
|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원조이고 망원동 망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부산 해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부평 평리단길, 김해 봉리단길 등이 뒤를 이었다는데 연원을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각각의 리단길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 공간만 다를 뿐이지 같은 혈통에서 나온 불온한 쌍둥이들이다.
○리단길 현상을 보고 있으면, 자기계발의 함정을 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최상위에 오르고 달콤한 과실을 따먹을 수 있다고 현혹한다. 하지만 자기계발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대로 모두가 노력한다면 정말 모두가 최상위에 오르게 될까? 그런데 왜 우리 세상은 점점 지옥이 되고 있는 것일까? 실망이 크시겠지만 결론을 말하면 모두가 노력하는 경우에 몇몇은 순위가 바뀌지만 거의 대부분은 이전의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 모두가 죽도록 노력만 더 할 뿐이다.
요식업계에도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한때 자주 보았으나 이제 보지 않는다. 골목 상권을 살리겠다는 훌륭한 취지의 프로그램이어서 시청했지만, 명확한 한계만을 확인했다. 그 프로그램보다 더 나은 프로그램이 나타난다 해도 총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총량이 있다. 전국의 모든 식당들이 맛집으로 변신해도 우리가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식사 총량의 수는 언제나 ‘국민 수×하루 세 끼’다. 너그럽게 야식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국민 수×네 끼’를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
자꾸 가격을 낮추라는데 그것도 답이 아니다. 가격이 낮은 집에 사람이 쏠리면 식사 총량이 얻어낼 수 있는 가격 총량이 줄어든다. 가격을 낮춘 식당에는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시장 전체에는 손해가 된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같은 금액을 얻어내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가 가격 낮추기에 나선다면 그 끝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낭떠러지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더한층 가혹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근사치의 답으로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정당한 노동에는 합당한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박리다매의 열매는 희생 위에서 피어난 핏빛 돌려막기 꽃이다.
총량이 바뀌지 않는데 어느 공간이 주목받는 공간으로 떠오르게 된다면 그 얘기는 다른 공간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간의 추가적인 수요를 창출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모습과 문화를 갖고 있을 때 가능하다. 같은 것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일시적인 환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띄우기 하는 것은 전체적인 국면에서는 돌려막기에 불과하고, 일회성 이벤트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만다. 공무원들이 ‘○리단길’을 찾은 관광객들의 비판에 귀만 기울여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결국 이리로 몰려갔다가 저리로 몰려가는 것일 뿐이다.
그럼, 하지말자는 것인가? 하지말자는 게 아니다. 안 할 수는 없다.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돌려막기를 피하자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는 아주 어렵다. 다른 길에는 없는 것을, 다른 식당에는 없는 메뉴를, 다른 골목에는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있기는 할까? 실은 없다. 물질적인 것에 주목하면 정말로 없다. 게다가 유한하다. 사람도, 공간도, 기념물도 있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그것이 답일 수 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내일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고, 그 절절함을 간직한 이들이 다른 공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있다. 문화를 만들고자 할 때는, 공간에 뿌리를 내린 나이테 촘촘한 건물과 사람은 돌려막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알고 만들어야 한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