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고자 죽기를 각오하고 의병의 기치를 올렸다. 바로 그 중심에 호남이 있었으니, 애국·애족·애향의 고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60갑자를 7번 돌아 7갑주기만에 다시온 임진년, 호남 의병을 다시 들여다 본다. 사진은 포충사 소장 ‘금산구국혈전도’(오승우 작).

“호남이 없다면, 이 나라 조선도 끝이 나는 것이요, 함께 싸웁시다. 결코 우리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나라가 위태로워진 지경에 처했다. 외세의 침략에 호남이 들불처럼 봉기하고 나섰다. 너나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군대를 조직했고, 목숨을 바치길 주저하지 않았다. 국난 극복의 상징이며 특유의 애국·애족·애향정신의 발현이다.
2012년은 임진란 발발 7갑주기가 되는 해다. 1592년 왜의 도발 이후 420년, 60갑자를 7바퀴 돌아 맞는 임진년이다. 나라 구하기에 기꺼이 칼을 들었던, 또 곡괭이와 낫, 호미까지 앞세웠던 호남민이다. 조선말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에도 수많은 민초들이 항거했다.

위대한 희생 위에 세워진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호남의병의 맥은 항일독립운동을 거쳐 5·18을 전후로 한 전국의 민주화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구국의 보루’, 호남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치열했던 의병활동 재조명 계기로

본지는 의로운 기상으로 온 몸을 던져 산화해 간 광주·전남의 의병활동을 재차 기려보고자 한다.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현장은 물론이고, 후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확인되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장소도 발굴해 보려는 차원이다.

이름도 없었던 숱한 의인들까지 가능하다면 찾아 함께 조명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호남은 의향의 고장임은 두 말 할 것 없다. 명색이 의향인데도 그 흔한 기념행사 조차도 없고, 의병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 진혼제나 의식행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호남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보는 보다 전문적인 학술세미나 등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호남의병 운동은 다른 지역에 앞서 가장 먼저 봉기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지역의 의병 운동이 쇠퇴하거나 침체 국면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고조됐다. 특히, 임진란 당시 호남의병은 8도 가운데 유일하게 육·해상에서 모두 봉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전국 의병활동의 중심지로서 명실상부한 ‘의병 전쟁’의 격전장으로 변했다. 더불어 전방위적 토벌 공세에 밀려 황폐화되기도 했지만 의연한 정신만은 절대로 꺾이지 않았다.

고경명 선생의 전국의병 제창에 모여든 6천여 의병들과 함께 백마피를 마시며 왜적 격퇴를 맹세하는 모습을 기록한 ‘창의거병도’.

◇국가·민족에 헌신하는 충절의 고장

무능한 정치로 인해 조선은 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사흘이 지나도록 수도 한성에서 군사 300명을 모으지 못했을 정도로 국방 상태도 허술했다. 적을 막아내야 할 일부의 장수들도 너무나 쉽게 전장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전선은 붕괴됐다. 왜는 단숨에 조선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하지만 항복문서를 받아낼 수 없었다. 의병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나라 수호의 기반이 됐고, 다른 지역의 의병활동을 선도했던 호남의병은 곡창지대인 향토를 지켜냄으로써 군수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 이 충무공 전서의 끝 부분 부록 서한문편 문구로, 나주 출신의 김천일 의병장과 호남의 장졸들이 진주성 제2차 혈전에서 모두 순절했던 이후 언급된 것이다.

호남의병이 단순히 향토 방위를 넘어 국토 방위전에 참가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거북선을 만들고 남해안의 물때를 정확히 알고 있어 이순신이 해전에서도 연전 연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또 하나, 식량 즉 군량미의 중요성으로 당시 호남 곡창에서의 군량미 보급이 진주성의 신화와 더불어 이순신의 해전 승리를 이끈 이유였다. 호남 민초들의 대동 단결과 협력이 있었다는 사실과 호남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충절의 지역임을 입증한다.

의병 전쟁에는 국난을 당해 신분을 초월한 자기 희생이 밑거름이 됐다. 노비 출신으로 순절한 봉이와 귀인의 넋을 기리고자 포충사내에 세워진 충노비.

◇소규모 의병활동 연구도 이뤄져야

지금까지의 기존 연구들은 저명한 의병장이나 의병 활동에 치중되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 호남 의병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게 이뤄진 측면도 있다. 지속적인 자료 발굴을 통해 각 지역에서 활약했던 소규모 의병활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호남의병은 기울어 가는 국권을 지켜낸 실질적이면서도 의로운 세력이었다.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호남의병 활동을 체계화하고, 이를 토대로 후대에 바르게 전승하는 일이 시급하다.

국내외적으로 혼돈의 시기가 우려되는 즈음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고, 좀체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 경보를 보내고 있다. ‘가까이 하기엔 먼 나라’ 일본은 독도 침탈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국난극복의 원동력이 됐던 호남의병을 재조명함으로써 국가와 민족공동체을 위한 호남정신, 전라도정신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이다.

/글=김종민 기자 kim777@kjdaily.com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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