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자락에 위치한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조선 팔도를 누볐던 의병장 김덕령을 기리는 사당이자 지역민의 쉼터로 유명하다.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알림=본보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임진란과 이후 광주·전남 의병활동과 전적지, 의병장 등을 발굴해 본란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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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이는 4월 한낮, 광주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충장사에는 나들이객들이 즐비하다. 들뜬 연인들의 속삭임에도, 단란한 가족들의 걸음에도 즐거움이 한 가득이다. 자연 그대로의 무등산 풍광과 고즈넉한 충장사의 숨결이 이들의 움직임을 조용히 보듬고 있다.
충장사 안팎을 느리게 걸어본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딛는 걸음은 아니다. 불과 수백년 전, 전장 속에서 ‘의(義)’를 다한 의병장군의 치열한 호국정신이 충장사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담양서 거병 연전연승

무등산 숲길은 충장공 김덕령(金德齡·1567-1596년)을 기리는 사당인 충장사에 닿는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조선 팔도를 누비며 활약했던 의병장이자 성리학자다. 본관은 광산·광주(光州), 자는 경수(景樹),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광주 최고의 번화가인 ‘충장로’는 다름아닌 김덕령의 시호에서 따왔다.

김덕령은 1567년 광주 무등산 석저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형 덕홍과 함께 대학자인 성혼의 문인이 돼 수학했다.

1592년 25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킨 형 덕홍을 따라 전주까지 갔다. 그러나 노모와 어린 동생을 돌보라는 형의 권유로 귀향했다.

그때 형은 고경명의 참모로 금산전투에 참여했다가 순국했다. 이듬해 8월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는 1953년 어머니의 3년 상을 치르던 중 의병에 참여했다. 전라도 관찰사 이정암의 청에 의해서였다. 전쟁 상황이 워낙 급박해 그는 상복을 벗고 담양에서 5천명을 모집, 전투에 나섰다. 그는 창원과 고성, 거제에서 거푸 이겼다.



◇음모에 엮여 억울한 죽음

그러나 이후 김덕령은 ‘신의가 없고 살인을 좋아하며 장수의 자질이 없는 자’라고 모함으로 인해 옥에 갇히고 말았다. 곧 풀려났으나 이 일로 김덕령에 대한 조정의 기대와 평가는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1596년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권율은 김덕령에게 난의 평정을 명했다. 운봉까지 출정했으나 난이 이미 평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김덕령은 회군했다. 음모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몽학의 난에 연루됐다는 음모에 엮여 한양으로 압송됐고, 결국 20일 동안 매 맞아 죽었다. 그때 나이가 29세다.



◇취가정에도 사연이…

충장사에서 금곡숲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김덕령의 생가터와 사당도 있다. 좀 더 걸어 환벽당을 지나면 ‘취가정’에 달한다.

취가정은 조선 말기 김덕령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후손인 김만식이 장군의 덕을 기리며 1890년에 지은 정자다.

정자의 이름이 취가정인 것도 사연 깊다. 송강 정철의 제자였던 권필의 꿈에 원한 맺힌 죽임을 당한 김덕령이 나타나 ‘취시가’를 불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목숨 걸고 싸웠던 충장공이 모함에 걸려 옥사를 당하고 만, 원한의 피맺힌 ‘취시가’를 들어보자.

김 장군의 동생인 김덕보가 형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풍암정’으로 잇단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한 잔 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듣는 사람 아무도 없네.

나는 꽃이나 달에 취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아.

꽃과 달에 취하는 것도 또한 뜬구름

한 잔 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이 노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네.

내 마음 다만 바라기는 긴 칼로 임금 받들고자’



길의 흐름은 다시 ‘풍암정사’로 이어진다.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정자다.

정자의 주인은 김덕보. 그에게는 형이 둘 있었다. 큰 형은 의병에 가담해 죽었고, 둘째 형은 역모에 얽혀 죽었다. 둘째 형이 누명을 쓰고 6차례에 걸친 형문 끝에 옥에서 죽었을 때, 김덕보는 형의 시신을 찾아 소달구지에 싣고 내려와 무등산에 묻었다. 그 형이 바로 김덕령이다.

삼형제의 삶이 모두 숭고하고도 애달프다. 개인의 삶은 불운했으나 역사에서는 이긴 자들이기도 하다. 수려한 무등산자락 품 안에서 역사적 서러움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들 삼형제의 눈물이 위대하기까지 하다.



◇산길 걸으며 의병 만나다

최근 ‘문화해설탐방’이 유행하면서 그는 다시 현대인들 곁으로 왔다. ‘무등산 옛길’ ‘무등산 역사길’ ‘무등산 의병길’ 등이 잇따라 만들어지면서 전국 각지의 등산객과 역사체험자들이 자연길을 밟으며 그의 삶을 조우하고 있는 것.

특히 지난해 7월 개방된 ‘무등산 의병길’은 우리 선조들이 조선시대 의병활동 때 다녔던 금곡동 풍암제에서 원효계곡을 따라 제철유적지까지 연결된 3.5㎞ 구간으로, 인기가 높다.

또 광주시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돼 있는 제철유적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철이 생산됐던 곳으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다. 바위에 ‘주검동’이라는 암각 글자가 새겨 있어 임란 때 김덕령이 돌에서 철을 뽑아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임을 말해준다.

더불어 의병길 주변 이미 개방된 옛길 구간에는 김덕령 장군 생가터, 충장사, 김덕령 장군의 누이가 치마로 감싸 안아 올렸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치마바위 등이 연결돼 있어 역사의 숨결을 온전히 느끼기엔 안성맞춤이다.

충장사에서 만난 시민 이동하(39·광주 남구 방림동)씨는 “주말 나들이 삼아 단순히 나왔다가 문화관광해설사의 김덕령 장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겸허해진다”며 “자기 밥줄과 탐욕을 지키기에 급급한 작금의 정치인들이 옛 의병들의 자기희생과 애국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공부·문화체험 위한 방문객 많아”
고옥란 광주 충장사 문화관광해설사

“예전엔 소풍 개념으로 많이 찾아왔다면, 요즘엔 문화체험과 역사공부를 목표로 삼아 찾아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방문객들의 의식이 매우 향상된 것이지요.”

광주 충장사의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인 고옥란(49)씨는 “충장사는 옛날부터 학교 소풍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면서 항상 북적였다”며 “하지만 정작 충장사가 어떤 의미의 곳인지, 누구를 기리는 곳인지 알려고 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고 회고했다.

고씨는 이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역사문화 관련 답사와 탐방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이후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김덕령이 누군지, 그에 관련된 역사가 어떠했는지 사전에 공부하고 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문화관광해설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방문객들의 해설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

고씨는 “충장사와 김덕령에 대한 기본정보를 가지고 오는 관람객들은 더 자세하고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해설사를 찾는다”며 “그래서 해설사의 입장에서도 더 많은 역사공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씨는 “더 많은 이들이 호남의병 역사에서 비롯된 강인한 광주정신을 알게 되길 바란다”며 “이러한 역사야말로 광주의 진정한 미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글=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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