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의 양을 상징하는 을미년 새해가 밝던 날 한편의 영화가 조용한 감동을 줬다. 1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럽의 오페라 극장을 사로잡았던 배재철이라는 테너 가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유지태 주연의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트로피 헌터’ ‘황금트럼펫’ 등의 별명이 암시하듯 세계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배재철은 그 성공의 정점에서 갑상선 암에 걸려 목소리를 잃고 좌절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 시절 목소리에 매료돼 배재철을 일본 무대에 소개해 주고 평생의 친구가 된 일본인 기획사 사장과 그의 팬들의 도움으로 일본 최고의 성대수술 전문의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그는 신앙의 힘에 의지하며 아내와 더불어 피나는 노력 끝에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멋진 오페라 무대에서 섬세함과 강력함을 갖춘 리리코 스핀토 테너가 들려주는 아리아 곡들, 예술가들의 갈등과 진한 우정, 그리고 자신의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를 상실한 한 예술가가 죽음보다 더 한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 승리의 스토리가 어우러진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던 이 작품은 현재도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공연예술가나 스포츠 스타들에게 있어서 몸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산이다. 그래서 몸을 다친 공연예술가나 선수에게는 인생의 행로 자체가 변하게 된다. 예컨대, 성대 결절로 성악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음악가가 지휘를 비롯한 다른 분야를 전공하게 되거나, 부상을 입은 무용수나 선수들이 지도자의 길을 가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것은 그러한 부상이 가져다 준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한 경우에 한정된다.

영화 ‘더 테너’의 감동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 것은 인생의 행로가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가야 할 ‘오직 한 길’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집념으로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무대 위에 서게 된 주인공의 기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주인공은 자신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성실함과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다. 둘째로, 그에게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하며 목숨처럼 헌신해 주던 지음지기(知音知己)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을 지지하고 지원해 주던 가족이 있었다.

60년 만에 찾아온 푸른 양의 해 첫날에 봤던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그 푸른 양의 속성과 맞물려 나 자신에게는 새로운 결심으로 다가왔다. 본래 양이라는 동물은 순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따뜻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해에는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양은 반드시 자신이 갔던 길로만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이 있으며, 부드러운 성격으로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성의 기질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양의 속성이 60간지의 순서에 따라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성격을 의미하는 ‘푸른 색’과 연결돼 온순과 정직 그리고 긍정과 성실의 이미지로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벌써 2월이다. 과연 나는 온유하면서도 우직한 자세로 나의 결심을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그러한 자세로 나를 도와주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와 같은 푸른 양(靑羊)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아시안 발레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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