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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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영혼들의 간절한 기도…‘自他不二’ 큰 울림으로 다가오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55>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 2006년 강타한 쓰나미의 현장을 보고…

내가 神을 다스리는 재판관이라면?
과연 판결문을 어떤 내용으로 결론지을까?

  • 입력날짜 : 2015. 08.05. 18:56
박종석 作 ‘덤블라 사원’ 시기리아 왕궁을 배경으로. ‘시기리아 왕궁과 비두랑걸래 산’ ‘람보다 산 풍경’ ‘시기리아 왕궁을 바라보다’
고산지대의 호수도시, 차밭이 많기로 유명한 누와라엘리아에 도착해 트레킹을 하고 빅토리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쓰나미에 의해 부모형제를 다 잃고 울부짖으며 술을 마시는 크리스나 고마르(36세)를 만나 그 사연을 듣고 눈물을 함께 한다.

부모 형제가 대재앙에 희생된 것을 한 달 후에 알았다면서 그는 “말끔히 씻어버린 자연을 저주한다. 돈!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행복을 한 순간에 빼앗겨 버려 쓰나미 이후 먹을 것도 없다”며 절규한다. 그러한 처절한 하소연을 듣고 나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눈물를 감추며 다만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포옹하고 용기를 내라는 말뿐….

그래도 고마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통스러웠는데 오늘은 좋은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는 말을 할 때 다소 위로가 됐나 싶다. 그러나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보면서 어느 누구든 선택하지 않은 죽음이 순간 다가온다고 가정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살아 있을 때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생사가 바뀌는 순간 나무토막보다도 더 못한 물질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혹 질병의 악영향을 줄까봐 두려워 무더기로 땅속에 묻히는 사건들이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든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기에 자연을 아끼고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함께 동행 한 김기호 박사님은 무신론을 내세우신 분인데 그 이후 이런 이야길 하신다. 가난한 이들의 고난! 쓰나미의 일부 현장과 녹취를 통해 “神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다만 인간만이 신을 찾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유기체 일뿐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나는 분명 우주질서의 무한함을 느낀다면 신은 허튼 일을 하지 않고 또한 관장하면서 신이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지구의 균형을 깨트려 생긴 자업자득이다! 라고 미흡한 결론을 내린다.



신에게 따져 묻고 싶다는 울분을 여행기 말미에 신은 이렇게 대답했으리라 가정해본다.

피고석에 앉은 신은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남겨 “지구별은 너희들 것이니 인간들이 잘 알아서 간수해보렴!” 하셨으리라 상상해본다.



이후 계속 여행하며 남인도의 3층 침대가 있는 열차로 이동 하는데 부바네스와르를 가는 도중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일어난다.

마음이 왠지 허심하신 김박사님이 인도산 작은 술을 마시자며 3층에서 물병 뚜껑으로 잔을 대용하여 나에게 권하려다 물병이 넘어져 순간 1층과 2층에서 피곤하게 자고 있는 인도인들이 느닷없는 물벼락에 벌떡 일어난다.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니 그들은 “노 프라블럼”이라고 겸연쩍게 대답한다. 그 후 술을 마시면서 김박사님과 나는 “어이쿠! 기차 안에서도 쓰나미가 일어나서 괜히 미안하네요”라며 숨죽여 배꼽을 잡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2달간의 여행성과를 점검하면서 대재앙에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강대국과 도시문명의 해택을 많이 누리면서 자연에 역행한 결과에 엉뚱한 약자들이 희생됐다고 보아진다.

또한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재앙을 예견한 짐승보다도 부족한 부분도 있고 나 또한 그들을 위해 돕지 못하였지만 나와 인연이 된 모든 이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대하고 사랑하여야 한다고 다짐한다.

바보스럽더라도 늘 봉사하며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실천을 다짐하지만 문명도시에서 몇 개월이 지나면 현실에 적응한다. 그래도 낮추고 또 낮아지도록 노력해본다.



후기…아름다운 인연의 끈!

스리랑카 여행기가 연재된 며칠 후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광주매일신문에 스리랑카 여행기를 쓰시는 박종석 화가님이시죠?”라고 묻는다. “그렇습니다만…”. 직원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대사님은 본국에 계시고 대사 직무대행자 Mr. Theshantha kumarasiri께서 박선생님의 여행기 글을 읽고 감동되어 식사를 초대하겠다는 직원의 전언이었다. 나의 전화번호는 광주매일신문 박희중 문화부장님을 통해 알았단다.
그러나 아직은 초대에 응하지 못하고 8월 초부터 20일 간의 몽고여행 후 가을쯤에 만나기로 약속 하였다.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스리랑카는 다시 방문하고 싶은 국가이기도 하지만 대사관에서 관심을 보이며 글쓴이를 만나고자 연락한 사례는 처음이어서 조금이나마 가난한 방랑자에게 격려가 되는 동시, 고생 뒤 끝의 아름다운 여운을 음미하게 한다.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의 자연과 국민들은 부처님의 미소처럼 차분하고 명상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그들은 보편적으로 타인에게 배려하고 이해하는 품성을 지니고 있기에 상기의 맛이 상쾌한 편이다. 2006년 말 쓰나미의 자연재해 때 방문해서 아픔의 현실을 목도하고 도움을 나누지 못했지만 대사관의 인연은 당시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휴머니즘을 느끼게 한다. 스리랑카 국민들의 따뜻한 기도로 지구의 한 모퉁이가 사랑과 평화로움이 유지 되는 것은 아닌가? 비약해본다.


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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