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이 펴내는 계간지 ‘주먹밥’ 최신호(27권 2010년 봄)는 ‘5·18민주화운동의 현재’를 주제로 세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5·18은 끝났는가?’라는 해묵은 과제에서부터 ‘광주정신의 보편적 독해’에 이르기까지 ‘광주’가 처한 현실과 나가야할 새로운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글들이다.
세 논문 말고도 박경동이 쓴 ‘인터넷 공간 내 5·18 왜곡실태 분석’이라는 연구논문도 충분히 눈길을 끌만하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같은 인터넷 보수 웹 사이트를 중심으로 5·18담론을 왜곡하는 이들을 추적하고, 왜곡방식을 밀도 있게 분석한 그는 왜곡담론의 생산자들이 노리는 효과를 이렇게 압축한다.
“공적승인을 받은 5·18에 대한 대항담론을 형성해 보수세력을 결집하고, 5·18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희석시켜 지배사상(국익, 안보, 자유주의)에 안주하게 하며, 5·18을 광주라는 특정지역의 문제로 유폐시켜 정치적 분열을 조장한다.”
왜곡담론에 대한 대응전략도 들어있다.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5·18기록물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같은) 적극적 공세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전문연구자를 양성해야 하며, 인터넷 의사소통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5·18 전국화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5·18은 국가기념일 지정 등 ‘제도화’를 통한 광주정신의 전승이 거의 완성단계다. 그럼에도 악의적 해석들은 폐쇄된 공간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특히 5·18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청소년들에게까지 가감 없이 퍼지고 있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의미가 자못 크다.
세 논문은 5·18에 대한 왜곡담론이 이처럼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를 5·18이 계속되는 ‘기억투쟁’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5·18이 여전히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한다. 하지만 세 논문은 5·18 왜곡담론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횡행하게 된 최근의 사회구조 변화와 그 안에서의 광주의 역할에 주목한다.
‘한국의 민주화와 복합적 과거청산’에서 정근식은 5·18을 추진동력으로 출범한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민주정부는 동시에 시민사회의 분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킨 토대인 ‘보수적 시민사회’의 성립이 그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과거’를 청산해야할 것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관점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광주는 더 이상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평범한 도시’에 불과하다. 5·18 왜곡담론의 생산자들이 의도한 바로 그대로다.
‘광주정신을 어떻게 세대를 넘어 살아있게 할 것인가’에서 조희연은 이 문제를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광주정신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물음으로 대신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민주주의 이름으로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진보에 대한 대중의 복수”로 규정하는 그는 “이명박을 뛰어넘는 비전과 정치적 리더십을 재형성해내지 않는다면 현실극복이 어려운 만큼 광주와 광주정신이 그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광주시의회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한 것은 조희연의 말대로 현재의 광주가 처한 ‘본질적 한계’다. 광주의 지방정치 공간과 광주라는 삶의 공간이 영남에 비해 결코 대안적인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광주가 새로 해야 할 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광주가 민주당의 단순지지가 아니라 ‘해체적 재구성’을 위한 강력한 대중적 요구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며, 둘째로 광주정신이 광주라는 공간을 대안적 전형으로 만드는 동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제를 바꿔보자. 당장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광주는 과연 이 새로운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우선 ‘민주당 대 무소속’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민주당에 대한 단순지지를 넘어서는 강력한 요구가 분출될 것 같지는 않다. 지방자치제도를 부단히 혁신하고 대안적 전형이 되도록 변화시키려는 노력 또한 그 싹이 보이질 않는다. 개혁공천의 의미가 실종된, 오만과 무능의 결정판인 민주당의 공천결과는 그 장애물이다. 30주기를 닷새 앞둔 ‘광주 5·18’이 의례화(儀禮化), 박제화(剝製化)의 굴레에서 도무지 벗어나기 힘겨워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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