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때문에 반쪽이 된 5·18 30주년 기념식을 지켜보며 걱정했던 것은 5·18의 박제화(剝製化)가 아니라 ’또 다른’ 왜곡 가능성이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민주정부를 거치며 성장한 ‘보수적 시민사회’가 한국의 ‘과거’를 청산해야할 것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관점을 발전시켰다고 보았던 정근식 교수(서울대)의 주장에 공감하면 더욱 그렇다.
이 보수적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킨 토대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지지율 40-50%대를 넘나드는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넣은 국가보훈처나 조화 대신 축하화환을 보낸 여당 대표에게 쏟아진 광주의 분노에 대해 아무 반응이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30주년 기념행사를 반쪽 낸 정부 당국이 광주시민에 대해 일말의 사과성명조차 없는 것은 이들의 흐름에서 보면 별 이상할 것도 없을 터이다.
얼마 전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The Sydney Morning Herald)는 ‘진실이 위험에 처한 한국’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장문의 기사를 게재한 적 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이 신문이 다룬 내용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보성향의 전임 위원장이 물러나고 뉴 라이트 성향의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그 활동을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은 진실화해위가 펴내려던 영문책자(Truth and Reconciliation)의 배포중단사태였다.
그 전말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영문책자가 배포 중단된 일처럼 5·18 30주년 행사가 반쪽이 난 일에도 청산되어야할 과거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만들어가려는 이들의 ‘조직적’인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거기에는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과거청산작업이 완료단계에 와 있는 5·18을 광주라는 특정지역의 문제로 유폐시키려는 저의도 숨어있을 수 있고,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까지 함께 엿보였다는 점에서 섬뜩하다.
진실이 이데올로기로 덧칠되어 가려지면 제대로 알려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해진다. 5·18의 진실 역시 거기에 덧씌워진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는데 30년이나 걸렸고 이마저도 아직 완전치 못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때문에 5·18 30주년 기념식이 반쪽이 된 일은 ‘광주’가 전혀 낯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전환적 위기’를 뜻할 수도 있고, 5·18이 더 이상 정신적 ‘에토스’일 수 없게 만드는 중대한 왜곡일 수도 있다.
허위를 벗어 던지면 저절로 태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이념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고 분간하기 어려우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구시대 유물인줄로만 알았던 전쟁의 공포가 내재된 냉전(冷戰) 이데올로기가 다시 살아나 개입되면 왜곡된 진실이 강요되기도 한다.
개개의 사실들은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되어 떠돌고 사회구성원 대다수는 패닉에 가까운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아직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5·18이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천안함 정국에서 당한 ‘치욕’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걱정된다.
이제 5·18 30주년 이후 광주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조희연 교수(성공회대)가 말한 것처럼 광주가 한국사회의 대안적인 지역 공간, 정치 공간, 삶의 공간이 되도록 하기 위한 중단 없는 노력이다.
새로 출범할 민선 5기의 광주 지자체는 전혀 다른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소통과 상생을 위해 무엇보다 언로(言路)는 제대로 뚫려 있어야 한다. 단체장은 아부(阿附)와 아첨(阿諂) 위에 군림하지 않고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광주시민은 80년 그 때보다 더 냉철하게 깨어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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