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수 作 목판화 ‘장산곳매’ (1990년, 60㎝×90㎝, 화선지에 잉크)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민중미술화가 최병수는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으로 스타덤에 올라 뜨거웠던 80년대 후반을 거침없이 온몸으로 투사했다.
90년대 민중화가들이 현장을 떠났을 때 그는 홀로 현장을 지키면서 투쟁을 했고 이제 환경작가로 세계의 어디든 뛰어가 환경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알리며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최병수 약력
▲ 1960 경기도 평택출생
▲ 1972 서울 상도초등학교 졸업
▲ 1974 서울 한광전수학교 2년 중퇴
▲ 1987 민미협회 가입,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제작
▲ 개인전 3회/대형 걸개그림 20여점/국립현대미술관외 다수 초대전
▲ 수상 제5회 교보생명환경문화상 대상, 2004 민족예술상
▲ 작품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 현재 민미협, 여수 환경운동연합 회원

최병수는 80년대 민주화 과정 속에 사생아처럼 어찌 보면 혜성처럼 나타난 기이한 화가다. 그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서울, 한광전수학교) 2년 중퇴로,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일찍부터 식당과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우리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온갖 잡다한 일들을 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소년기인 10대 중반부터 삶의 밑바닥에서 온갖 막일을 하면서 인생을 스스로 추슬러 왔고 이러한 삶은 청년기에 접어들어 세계관 형성에 기초를 다지게 됐다. 줄여 말하면, 최병수는 미술제도교육을 전혀 받아 본적이 없고 미술과 연관도 없었던 사람이다.
1986년, 그가 목수 일을 하고 있던 시절이다. 당시 홍익대에 재학 중이던 친구로부터 벽화제작을 도와 달라(사다리제작)는 부탁을 받게 된다. 이것이 그가 미술과 인연을 맺게 된 시작이었다. 이듬해 이한열열사 사망이후 목판에 제작했던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자그마한 판화그림을 친구들의 권유로 크게 확대했다. 이렇게 확대한 걸개그림이 최병수를 오늘날 민중미술계의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이다.

최병수 作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년, 7.5m×10m, 광목에 아크릴)1989년 연세대 대강당 앞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주기 추모집회

그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민중의 진솔함을 보았고 체험했다. 그러한 기층민의 삶과 애환을 체험한 그는 올바르지 못한 사회와 정치현실에 대한 염증을 느낀 80년대를 올곧은 성품으로 자신이 순순히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최병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로 인해 화가로 데뷔했다. 그가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1986년, 그는 신촌벽화 ‘일하는 사람들’과 정릉벽화 ‘상생도’를 제작했다. 제작을 시작하면서부터 수사기관의 주목을 받게 되고 결국 경찰서에 붙잡혀 수사를 받았다. 담당형사는 조서의 직업란에 ‘화가’라고 기입했고, 그로인해 졸지에 정부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화가가 됐다. 80년대의 시대상황이 그를 목수에서 화가로 둔갑시켰고, 이후 그는 진짜 화가가 됐다.
그는 80년대 걸개그림이라는 장르와 민중미술이라는 바다 속으로 온몸을 투신한다. 걸개그림은 일반적인 그림과는 달리 공공적인 표현매체라는 장르의 특성과 민주화를 위한 소통에 큰 기여를 위한 선전매체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선전매체이면서 당시 대표적인 정치선동의 시각미술로 각광받았다.
당시 젊은 화가들과 함께 어울려져 공동작업을 해야만 하는 걸개그림은 그가 활동하기에 적합한 무대였으며, 그의 기획능력과 예술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었던 장이 되었다고 본다. 민중미술계와 운동권에서는 걸개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귀하던 시기에 그의 능력을 백분발휘 할 수 있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이한열 영정’(1987)를 시작으로 ‘연대백년사’(1987), ‘반핵반전도’(1988), ‘백두산(1988)’, ‘노동해방도’(1989), ‘쓰레기들’(1990), ‘장산곳매’(1990) 등등 나열을 하지면 한이 없다.

최병수 作 ‘펭귄이 녹고 있다’ (2008년, 파리에서 전시 중)

최병수는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의 확고한 반열에 올라선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쉬움도 있다. 그의 걸개그림에 굵은 윤곽선에 의한 관념적인 형상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현상은 자기형상성의 부재에서 오는 한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형상성의 부재는 곧 시각적 힘이 생기지 않는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특히 리얼리즘 미술에 있어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형식과 형상성이 강조되고 그것들에 의해 진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로 ‘(故)오윤’과 ‘홍성담’의 그림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내용에 앞서 탁월한 형상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병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예술적 미덕은 현장의 성실함으로 아쉬운 형상성을 채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 이후 들어 민중화가들은 현장을 떠나 개인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대다수의 민중화가들은 80년대 후반을 거치고 일정한 정치·예술적 자기성과를 일궈내면서 그들의 생리가 그렇듯 은밀한 자기작업에 몰입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는 달리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현장이면 가리지 않고 달려가 끊임없이 작업과 더불어 현장참여를 성실하게 이어간다.
‘노동운동’, ‘반핵·반전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장애인 운동’ 등 우리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시각화 시켜가면서 상징적 역할을 했다. 그로인해 그는 민중미술가로의 이미지를 더욱 곤고히 다져가게 된다.
2000년 그는 새만금 운동으로 갯벌에 솟대와 장승 70여개를 세웠고 북한산에 ‘NO TUNNEL’이라는 망루를 설치했다. 또한 2003년 이라크 공습에 인간방패가 되기 위해 나섰고 매향리로 평택 대추리로 달려가 그림과 조형물로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을 했다.
그가 환경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원진레이욘 노동자들이 폐가 녹아가고 임금투쟁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부터다. 그는 원진의 노동자들에게 우선 필요한 문제는 임금인상이 아니라 작업환경의 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동운동은 임금투쟁에 앞서 노동자의 건강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며, 건강은 맑은 환경에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건강하고 전인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 그의 사회·환경운동의 철학이다. 그렇다. 환경을 보장받지 않으면 건강은 물론 인권도 자유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자도 사용자도 예외가 없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한때 운동권에서 비아냥거리는 비판도 받았으나 현재는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서 ‘펭귄이 녹고 있다’는 얼음조각 시리즈를 진행했다. 세계 중요장소를 찾아다니며 펭귄을 제작·전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이다. 1997년 지구온난화 문제로 일본 쿄토에서 ‘제3차 세계환경회의’가 열릴 때 첫 얼음펭귄의 퍼포먼스를 발표, 전 일본 언론은 이를 앞 다퉈 보도했다. 이후 한국과 남아공, 뉴질랜드 등 7개국에서 퍼포먼스를 했고 앞으로 30여개의 세계주요 장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얼음펭귄을 제작·전시하는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외신(AP, AFP, 일본방송, 프랑스 르몽드지, 뉴욕타임지 등)들의 취재로 이제는 국내보다는 국제적인 환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그는 민중미술의 이념과 철학을 전 지구를 대상으로 실천 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그의 예술적 과정과 수업은 현장에서 비롯됐다.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온몸을 던져 예술적 체험과 조형성을 성실성과 열정으로 채워온 것이다. 이것은 다른 작가들과 전혀 다른 사례로 예술가와 환경운동가 모두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몸을 아끼지 않는 활동으로 2003년 위암 3기 진단과 수술, 연이은 교통사고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전남 여수의 외곽지 바닷가 열악한 시골집에서 작업하면서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 현재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건강일 것 같다. 그래야 작품제작도 환경운동가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는 우리시대의 맑은 등불과 같은 귀한 사람이기에 걱정이 앞선다.
어찌되었든 그가 차지하는 80년대 걸개그림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성과이자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필자:장경화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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