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도(仙)(53×45㎝, 1998년작, 캔버스에 아크릴)

곽영화는 80년대 중반이후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노동과 정치집회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작가다. 특히 부산·울산지역은 노동운동이 거센 지역으로 현장미술운동을 해오면서 그는 민족미술의 형식과 내용을 위한 원형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탱화를 수업하고 ‘굿’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어져 개인전을 통해 ‘무신도’의 연작들을 발표한다. 이러한 민족적 형식의 근거는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에서 그 원형질을 찾을 수 있겠으나 결국은 작가의 작업실 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익힌 것이다. 또한 그는 ‘부마항쟁’과 ‘5월 광주’라는 역사적 프리즘으로 예술적 태도를 구체화 시켜내고, 최근 울산의 ‘신화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운동과 미술운동의 만남을 주도하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약력) ▲1962년 경남 함안출생 ▲동아대학교 졸업(1989), 부산대학교 대학원 졸업(2009) ▲개인전 7회(서울, 부산, 울산 등) ▲단체초대전 -2010. 전국환경미술제(울산문예회관) -2009. 어린이를 위한 화가들의 미술전(울산문예회관) -2007. 일상의 역사전(부산시립미술관) -6·10항쟁 20주년 기념전(울산해피갤러리) -2006. 대추리 현장미술전(대추리) -2005. 평화통일 남북미술축전(안산 단원미술관) -동학미술제(경주국립박물관 특별전시실) -광주민족미술제(광주 5·18기념관) 외 다수

◇뜨거운 80년대의 미술현장운동으로
곽영화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부산에서 마치고 뜨거운 80-90년대를 관통하면서 부산·울산지역을 중심으로 노동과 정치집회 현장에서 미술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품고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부마사태’(1979년 10월16일)를 부산시청에서 직접 목도하고 이듬해 ‘5월 광주’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입시문제로 다른 사회·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가질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아마도 의식이 없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부마사태’때 부산 역 광장의 탱크와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은 공포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뒤늦은 대학입학 이후 2학년, 그림에 열망이 남달랐던 그는 독일의 신표현주의 화집을 접하고 한동안 신표현주의 그림을 모방하는 그림들을 그린다. 이 시기 타과 학생들과 함께 스터디그룹을 결성, 예술사회학 서적을 중심으로 정치·경제분야에 이르기까지 점차 영역을 넓혀간다. 그리고 점차 운동권 영역으로 관심과 활동을 확장시켜 간다. 이 시기를 전후해 운동권 선배들의 구전과 다양한 사진자료들을 통해 ‘5월 광주’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부산지역 미대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그림패 낙동강’(1986)을 결성, 이듬해 ‘6월 항쟁’에 참여했다. 이어 현장중심의 미술운동을 지향하는 청년미술인을 중심으로 ‘부산미술운동 연구소’(1988)를 재결성해 노동현장과 정치현장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광주의 ‘시각매체연구소’와도 만남도 시작된다.
당시 그는 대학과 노동현장, 집회를 오갔고 밤에는 작업실에서 개인작업에 열중했다. 현장미술은 주로 걸개그림, 전단, 만화, 만평, 머리띠, 깃발 등으로 운동현장에서 필요한 시각매체를 제작했다. 이때 “리얼리즘 미술은 민족미술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민족적 형식과 내용으로 새로운 전형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화두였으며, 이는 ‘시각매체연구소’와 그 맥을 같이한다.


◇‘5월 광주’와 민족미술의 원형찾기
그는 민주화 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이 거센 부산·울산지역의 한 복판에서 현장미술을 이끌면서 대중이 요구하는 모든 시각매체의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던 주요 이념은 시대적 환경에 주어지는데 ‘부마항쟁’을 통해서 ‘5월 광주’를 바라보았고, ‘5월 광주’가 민중의 승리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80년대 현장미술운동을 문화적 싸움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현장미술운동과 동시에 우리 미술의 형상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함께했다. 특히 탱화를 배우기 위해 6개월 동안 거머스님들에게 지도를 받고, 이론적인 무장을 위해 채희완(부산대 교수, 미학), 임진택·김민기 등과 꾸준히 교류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 미학을 전공해 ‘한국 무신도의 미의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동시에 부산지역 문화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굿에 관한 행사를 많이 주관한다. 굿은 우리의 전통으로 등장되는 형상 하나하나가 민족적인 형식과 내용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렇듯 민족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그림 그리기 위한 연구와 실천적 작업들을 현장중심으로 거침없이 하게 된다. 당시의 그가 제작한 걸개그림들을 보면 굵은 먹 선과 화려한 오방채색을 사용해 고구려 벽화, 조선불화, 민화 등의 전통을 연구한 노력이 드러나 보인다. 이러한 기법은 경쾌하고 힘이 있으며, 낙관적인 분위기로 감동있게 그려내어 민족적 형식의 전통을 구현했다고 본다.
그는 80-90년대의 열정적인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현장미술사에 한 축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민족미술 형식의 실험과 회화적 내공을 축척하는 한편 동시에 자신의 예술적 성과를 이룩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

넋의 바람을 풀이하다(130×130㎝, 1997년작, 캔버스에 아크릴)

◇민족미술의 형상성에서 정신성으로
곽영화는 80년대 현장미술의 형식을 90년대 후반 개인작업 안으로 끌어와 발전시킨다. 대부분의 80년대 민중미술화가들이 현장에서의 형상성을 다 버렸다면 그는 현장미술의 형상성을 성공적으로 자신의 작업 안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는 첫 개인전(1996)에 1차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다. 출품된 ‘무신도’시리즈는 그동안 실험하고 연구한 결과물들로 ‘굿’이라는 민족의 전통적 테마를 재구성한 형상과 내용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를 제작하게 된 배경에는 물론 민족미술의 원형을 찾겠다는 의미도 강하지만 80-90년대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게 해원해주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다고 본다. ‘무신도’의 그림들에 대해 박생광(1904-1986)의 느낌이 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민족형식을 그 만의 독창적 형상성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돋보인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발표는 몇 차례 이어지게 되지만 최근 그의 7번째 개인전(2010) ‘Nirvana의 시간’에서 보여주는 작품경향은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그동안 보여줬던 ‘무신도’ 경향은 민족적 형상의 구현이라는 명제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 작품들은 그러한 형상이 화면에서 드러나지 않고 이미지가 추상화가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 있는 의미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민족적 형상성 보다는 정신성과 사상에 중점을 두고 있어 보인다.
이렇듯 그의 예술관 역시 90년대 중·후반과 달리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려는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우리 민족의 보다 근본적이고 내밀한 정신세계와 사상에 접근을 하고 있으며, 한국미학의 원형을 찾아가는 방법에 있어 과거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는 작업실 안에서 개인작업과 함께 아직도 현장을 올곧게 지키고 80년대 미술운동현장에서 익힌 역량을 발전시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미술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울산의 민예총 미술팀들과 함께 ‘2010 마을미술 프로젝트-신화 만들기’를 통해 지역주민운동과 미술운동의 만남을 주도하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의 중심에 위치한 민족적 형식의 근거는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에서 그 원형질을 찾을 수 있겠으나 이는 작업실 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곽영화는 알고 있다. ‘5월 광주’라는 역사적 프리즘을 통해 익힌 한 시대의 리얼리즘화가로의 모범적 실천으로 이를 구체화시키고 있다.





장 경 화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