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0(목)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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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민간인학살의 연대기적 양상이다.
한국전쟁의 첫 단계인 작은 전쟁 기간 주로 제주4·3이나 여순사건 등과 같은 사건에 10만명 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여순사건의 민간인학살의 양상은 군경토벌 및 국민보도연맹원의 학살이나 형무소의 수감자 집단학살, 부역혐의 학살, 지방좌익과 14연대 반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무차별 학살의 양상이 전개됐다.
둘째는 학살주체별로 본 민간인학살이다. 학살주체는 아군 측에서는 국방군, 경찰 등으로 대별될 수 있고, 반군 측에서는 14연대 반군을 주축으로 빨치산, 지방좌익으로 대별될 수 있다.
셋째는 피학살자별로 본 민간인학살이다. 피학살자는 민간인, 국민보도연맹원, 형무소 수감자, 부역혐의자, 우익 인사 등 적법한 절차도 없이 학살의 대상이 되는 불특정 다수 민간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넷째는 학살행위 유형별로 본 민간인학살과 야만성이다. 학살행위의 유형에는 총살, 생매장, 초토화 작전, 수장, 일본도에 의한 참살, 죽창에 의한 척살, 굶어 죽이기, 때려죽이기 등이 있다.
위의 민간인학살 형태의 유형은 부역혐의 등 뚜렷한 혐의도 없이 학살의 대상이 되었으며 학살의 행위에는 지금까지 모든 죽임의 형태를 다 동원한 인권박물관과도 같아 야만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은 여순사건 민간인학살의 근원은 진압군에 의한 군경토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부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2010년 12월30일 현재)를 토대로 그 피해의 규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전남동부지역 지역 일대 1천353명, 전남동부지역외 전남지역 228명, 전북지역 24명, 경남지역 458명, 14연대 반군 33명, 지역 미상 117명으로 총 2천213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볼 때에 민간인학살의 문제는 현재 유일하게 영·호남을 가리지 않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또한 학살의 주체는 국군과 경찰에 의해 2천60명이었으며, 반군과 지방좌익, 빨치산에 의해 15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비율로 보면 93%의 절대 다수가 국군과 경찰이라는 소위 아군에 의해 학살 만행이 저질러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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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순사건 시기에 벌어진 민간인학살의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추려진다.
①여순사건 직후, 당시의 피학살현황은 정부 조사결과(1948년 11월-1949년 11월) 1만1천여명에 상당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②명령 계통이 분명히 있는 의도적 학살, 조직적 학살, 준비된 학살이 큰 비중을 점했다. 이 점에서 여순사건의 학살은 계엄령을 틈타 벌어진 ‘국가 후원적 대량 살해’ 범죄요 국가 테러리즘 그 자체인 측면이 컸다.
③좌·우익 쌍방에 의한 동족학살의 본질은 ‘이데올로기적 학살’ 또는 ‘정치적 학살’(politicide)이었다.
④좌·우익간 보복의 악순환에 의한 연쇄 학살의 양상도 많이 나타났다.
⑤어린이·노인·부녀자 등 방어 능력도 어떤 혐의의 여지도 거의 없는 약소자들까지 무차별적 학살이 자행된 경우가 많았다.
⑥학살 수법과 주검처리 방식이 매우 잔인하고 원시적이었다.
⑦어느 쪽이든 학살자(집단)들은 별 죄의식이 없이 자기 정당화와 합리화를 꾀했다.
여순사건 민간인학살 문제를 거론할 때 우선 지난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사용됐던 ‘양민’의 개념을 재고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로 지목되는 것은 전근대 시절의 천형과도 같다. 빨갱이에게는 그 어떠한 처벌이나 폭력을 가해도 용인이 되었고, 부녀자와 자녀들에 대한 유린도 용납이 되었으며, 그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해도 반발이 없었다.
그리하여 여순사건 후 지난 65년 동안 피학살자들의 가족들과 기적적인 생존자들은 사실상 죽은 목숨이었다. 재산을 빼앗기고 망가진 몸을 갖고서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동네가 쑥밭이 된 이후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제주4·3이나 여순사건의 피해자들처럼 이 상처를 잊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기도 하고, 또 자녀들이 피해를 입을까 봐 철저하게 강요된 침묵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하여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 활동이 본격화되는 시점에도 소수의 유족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선뜻 나서 신청 접수한 사람이 5분의 1에 그쳤던 것이다.
양민이라는 것은 사상적인 순수성, 즉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한 다음 좌익을 악으로 보고 그러한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그것은 어떤 가치를 절대 선으로 놓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들을 불순한 존재로 규정하는 극도의 반공주의가 통용되는 한국사회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국제적인 규범에서 사용되는 민간인(civilians)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군경토벌작전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민간인과 무장 세력과의 구별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동이나 여성, 노약자 모두를 적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양민이라는 개념을 계속 사용한다면, 양민에 대한 학살은 부당한 것이고, 양민이 아닌 사람에 대한 학살은 정당하다는 결론으로 유도될 수도 있으며, 이는 공권력이 저지른 불법적인 인권유린을 그대로 용인하는 결과가 된다.
이제 우리는 반공이라는 국가주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여순사건 민간인학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좌우익의 구분을 떠나 여순사건으로 발생한 모든 억울한 죽음들, 특히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학살 문제를 거론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학살을 저지른 국가는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그들을 일반 사람들과 격리시키며, 공식 역사해석을 통해 그들의 기억을 조작한다. 학살이라는 국가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의 조작은 더 큰 부도덕성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진실을 덮으려면 덮을수록,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이야기처럼 강제로 은폐하려는 측은 더욱 더 무리한 정책과 은폐 작업을 시도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국가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형태의 전쟁 혹은 대량학살(genocide)의 반인권적인 사례가 언급되고 있지만, 국가가 구성원인 국민에게 저지른 폭력, 그리고 정치권력에 의해 조장된 동족 갈등으로 인한 대량학살이야 말로 20세기 문명을 가장 야만으로 떨어뜨린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물리력의 독점 기구’로서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막는 일이야말로 노동인권, 여성인권, 소수자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첫걸음이고, 이 첫걸음을 회피하는 모든 인권 운동이나 인권 담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즉 국가의 자의적 권력행사의 유혹을 막아야만 사회 전 영역에서의 인권 보장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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