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雪(신설)
지봉 이수광

하늘에 옥수궁을 새롭게 짓느라고
도끼에 구름 도끼 장인들 힘쓰는데
하늘엔 눈이 내리고 흰색에 단장했네.
天上新成玉樹宮 雲斤月斧役群工
천상신성옥수궁 운근월부역군공
紛紛落雪隨風下 粧點人 一色同
분분낙설수풍하 장점인환일색동

흔히 우리는 첫눈이라고 했다. 평생 첫사랑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하듯이, 1년 중 처음 맞는 첫눈은 그 만큼 섬뜩한 감회를 담아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첫눈을 맞는, 첫눈을 보는 시인은 감동해 마지않았음을 보인다. 우리 선현들은 흔히 ‘신설’이라고도 표현했다. 그 때의 감동이나 지금의 감동이나 매일반 같았을 것은 분명하다. ‘하늘에서 바람 타고 땅위를 푹신하게 적신 나머지, 인간세상을 온통 흰색으로 단장하였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하늘나라에서 옥수궁을 새로 짓고 있는 것인지’(新雪)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지봉(芝峯) 이수광(1563-162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학을 도입했으며 ‘지봉유설’을 지어 서양 사정과 천주교 지식을 널리 소개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1613년(광해군 5)에 이이첨이 대옥을 일으켜 폐모하자 관직을 떠나 이후로는 두문불출했다고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나라 옥수궁을 새로 짓고 있는 것인지 / 구름 도끼 달 도끼 들고 장인들 모두 힘을 쓰네 // 하늘에서 바람 타고 땅위를 푹신하게 적신 나머지 / 인간세상 온통 흰색으로 단장하였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첫눈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눈을 보면서 시상을 일으키는 경우는 많았다. 흰 눈을 보면서 나라님이 죽어서 온 세상이 상복(喪服)을 입었다는 시상이 있는가 하면, 눈꽃이 피었다는 시상도 있다. 위 시를 보면 우리 선현들이 즐겨 썼던 선경후정을 뒤집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2구가 정(情)을 품고 있고, 후2구는 경(景)을 다소곳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첫눈을 보면서 옥수궁과 도끼를 든 장인을 연상했기 때문이겠다. 하늘나라에서 임금이 살아야 할 옥수궁을 새로 짓느라 애를 쓰고 있는지, 구름 도끼 달 도끼 들고 열심히 꾸미고 있는 장인들이 힘쓰고 있다는 시상이 그것이다. 시인의 생각은 우주까지도 전연 새로운 시세계로 몽땅 바꿔 놓는 수가 많았음도 생각할 일이다.


화자는 하늘의 조화로운 정을 그리기에 바쁘더니만 이제는 지구상의 모습을 그리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눈이 분분하게 내리더니만, 인간세상을 온통 흰색으로 단장했다는 차분한 시상을 만난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보슬보슬 하얀 솜을 내려준다는 동화속의 이야기도 다소곳이 담을 수 있다.

※한자와 어구

玉樹宮: 천상에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 雲斤月斧: 구름과 달을 도끼로 사용해 옥나무(玉樹)를 다듬느라 옥가루가 눈이 됨. 群工: 여러 사람의 장인들. 粧點: 좋은 터를 골라서 집을 짓는다는 뜻. // 紛紛: 흩날리다. 落雪隨風: 바람을 따라서 눈이 떨어지다. 人 : 인간세계. 一色同: 모두가 같은 색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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