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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 끝나 임금님 서울로 오신 뒤에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내는데
고기를 맛보는 은총 한 번도 못 받았네.
金輿旣旋反 玉饌競珍脂(김여기선반 옥찬경진지)
嗟汝厠其間 詎敢當一匙(차여측기간 거감당일시)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도루묵이 나온다. “은어는 동해에서 난다. 처음 이름은 목어였다. 고려 때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은어로 고쳤다가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쳤다 해 환목어라 한다” 선조 때 인물인 허균이 적은 글이니 그동안 개명의 주인공을 선조로 안 것은 잘못이다. 세상 말의 와전이 늘 이렇다.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낸 적이 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불쌍한 이 도루묵도 그 수라상 사이에 끼었는데(還目魚)로 제목을 붙여 본 율(凓)의 4수인 오언율시풍이다.
작가는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642년 척화를 주장한다 해 심양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왔던 인물이다. 1643년 대사헌, 형조·이조·예조 판서 등을 역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646년 별시관으로 출제했다가 시제에 역의가 있다 해 관직이 삭탈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 불쌍한 이 고기도 수라상 사이에 끼었는데 / 임금님이 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임금님 돌아가자 다시 목어(目魚)되었네4’로 번역된다. 동해로 몽진 갔던 임금이 나라가 평정된 후 궁으로 돌아갔다. 어려웠던 시절에 동해에서 손수 은어라는 이름을 주고 먹었던 고기였음을 알고 아랫사람들이 그 반찬을 놓았다. 그렇지만 임금의 태도는 돌변했다.
시인은 나라가 평정되고 임금님이 돌아갔음을 시상으로 떠올렸다. 난리가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도루묵도 올랐다. 이 시상은 임금님의 환대를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를 그대로 보이려는 주머니임을 안다.
화자는 앞 구에 이어서 맛없는 고기를 생각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불쌍한 도루묵 고기도 수라상 사이에 끼었는데, 임금이 맛을 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임금님의 입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음을 알게 한다. 이어지는 5수에는 ‘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 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네’라고 해 이름이 오히려 삭탈됐음을 시상으로 묶어냈다.
※한자와 어구
金輿: 금상의 수레. 임금의 행차. 旣: 이미. 旋反: 돌아가다. 玉饌: 수랏상. 競: 다투다. 珍脂: 진미. 좋은 기름기. // 嗟: 아차. 汝: 너, 이 고기. 厠: 여기선 [廁]과 같으나 ‘부엌’으로 봄. 其間: 그 사이. 詎: 어찌. 진실로. 敢當: 감당하다. 一匙: 한 번 먹다. 임금이 숟가락을 젓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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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