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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稱是外飾 委棄非汝疵(명칭시외식 위기비여자)
洋洋碧海底 自適乃其宜(양양벽해저 자적내기의)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고
버림을 받는 것 그대 탓이 아닌데
저 푸른 깊은 바다에 그대 모습 아니리.
흔히 ‘말짱 도루묵’이란 말은 애써 벌여 놓은 일이 원점으로 돌아가 헛일이 되고 말았다는 관용적 표현이다. 목어가 은어로 승격돼 좋다 싶었는데 도로 목어가 됐으니 좋다 말았다는 뜻이겠다 싶다. 한편 그물이 묵직해 잔뜩 기대했으나 쓸 생선은 없고 하찮은 ‘돌목’만 걸려 올라왔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어 보여서 둘 다 통한다.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의 깊은 곳에,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는가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름으로 버림 받는 것 그대 탓이 아니라네(還目魚)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6수인 오언율시풍이다.
작가는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주자학을 정도로 신봉한 중세 봉건시기의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유가(儒家)의 현실긍정적인 세계관을 고수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이단과 연사류가 만연하는 당시의 문풍을 크게 비판하면서 유가의 경전을 모범문(模範文)으로 인식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일 뿐 / 이로 인해서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의 깊은 곳에 /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임금님 돌아가자 다시 목어(目魚)되었네 6’로 번역된다. 여섯 구나 된 중장시문이기에 첫수에서 인용됐던 시상을 떠올려 시의 연관성을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시인은 첫 구에서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 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라 //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 그 모양새도 볼 만한 게 없었다’고 하면서 맛도 없고 볼품도 없다는 시상 주머니였다.
시인은 맛없거나 모양새쯤이야 볼품은 없지만 그것이 고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시상주머니를 만지게 된다. 도루묵이란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로 인해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현상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김새와 진심을 같은 선상에 놓은 사람도 많다.
화자는 비록 사람들의 사랑은 폭넓게 받지는 못하지만, 바다에서의 처지는 자못 다르다는 시상을 떠올린다. 도루묵처럼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만은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자기의 생활 여건이나 처지에서 오직 그 자체에 만족하는 또 다른 면을 생각해야 된다는 시상의 이면을 보게 된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名稱: 이름이라고 칭하다. 是: 이다. 동사로 쓰임. 外飾: 겉치레. 외부 장식. 委棄: 버림을 받다. 非汝疵: 그대의 탓이 아니라네. ‘汝’는 목어인 ‘도루묵’ 자체를 뜻함. // 洋洋: 넓고 넓다. 碧海: 푸른 바다. 底: 깊은 곳. 自適: 유유자적하다. 乃: 이에. 바로 이것이. 其宜: 그게 마땅하다. 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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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1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