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작가 촹 치웨이의 ‘다시 태어난 나무 연작:리본트리(광주)’

‘아동 착취’라는 사회적 부조리를 다룬 유소영 작가의 ‘Party of sweets’

여선구 작가 ‘왕과 광대’ /최명진 기자

후각을 자극하는 달콤한 냄새가 풍겨온다.

초콜릿 분수가 샘솟고 있는 이 작품은 유소영 작가의 ‘Party of sweets’다. 작품명에 걸맞은 화려한 초콜릿 동산이 펼쳐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쌓여있는 초콜릿 조각은 어린아이의 손이나 발과 같은 신체 모형이다. 바닥에 있는 네 개의 모니터에선 다국적 기업인 초콜릿 회사 주식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주가가 오르면 조명이 작동하며 초콜릿을 기괴한 형태로 녹인다. 호화로운 초콜릿 분수를 곧 ‘아동 착취’라는 사회적 부조리에 비유한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날의 좀비를 다각적으로 표현해낸 전시 ‘좀비 주의’(Attention! Zombies)가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 4관에서 열리고 있다.

20세기 초 서구 영화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좀비는 이제 21세기 한국 영상 문화의 주인공이 됐다. 2016년 영화 ‘부산행’부터 2019년 드라마 ‘킹덤’, 올해 초 큰 인기를 모은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지금 전세계는 ‘K-좀비 열풍’이다.

이번 전시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등장한 ‘오늘날의 괴물’ 좀비의 다양한 양상을 돌아보고 동시대 아시아 문화 연구 주제를 현대미술로 확장해보는 자리다.

개막일인 지난 20일 찾은 전시장에선 현대무용가 김봉수의 퍼포먼스 ‘웹 팬데믹’이 펼쳐졌다. 원초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의 모습과 미디어 발달로 윤리적 퇴보를 겪는 우리의 현실을 무용으로 표현했다. ‘좀비 파우더’라는 하얀 가루를 온 몸에 묻힌 무용수들의 비틀린 몸짓은 편향적 사고를 지닌 좀비와 같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프랑스 혁명을 연상케 하는 여선구 작가의 거대 도자 조각 ‘왕과 광대’는 계급 갈등과 억압 문제를 이야기한다. 작품 속에는 동·서양 이미지들이 혼재돼 있는데, 이는 이주 예술가로서의 작가 이력을 방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명우 작가의 영상 작업물 ‘너 죽인다’는 남북 군사가 만나 대화하는 가상 상황에서 시작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공격 대상이 된다는 좀비물의 클리셰에 기초한 서사다. ‘비틀린 자’로부터 공격 당한 이들은 초소에서 함께 경계 근무를 선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시작된 대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결국 이들은 모두 ‘비틀린 자’로 변해간다. 친밀한 사이에서의 코로나19 전파, 남북의 이념 갈등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레지던스 작업을 해온 작가 촹 치웨이는 빛과 공간을 활용한 작품 ‘다시 태어난 나무 연작 : 리본트리(광주)’를 보여준다. ‘생과 사’라는 동양철학에 주목한 작가는 일본의 꽃꽂이 예술 이케바나(ikbana, 生花)를 모티브로 대상에 인공적인 생명력을 부여한다. ‘생과 사’ 그 경계에 위치한 좀비의 존재와 함께 현대문명과 자연의 신선한 조합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밖에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후지이 히카루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상, 비물질화 시대 좀비의 존재를 생각해보게 하는 그룹 BCL의 비디오 프로젝트, 핵 좀비들 속 살아남으려는 생존자들을 그려낸 방정아 작가의 대형 걸개 그림 등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전시 기획을 맡은 나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한 시대가 품고 있는 시간성과 지역성을 흡수한 동시대의 좀비를 다각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며 “사회·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좀비와 시대를 은유하는 좀비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26일까지 이어진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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