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夜(강야) / 청묘거사 차천로

고요한 밤 고기는 낚시에 물리고
물결에 배위에는 달빛이 흐르는데
강남의 기러기 소리 바다 산 가을이여.
夜靜魚登釣 波淺月滿舟
야정어등조 파천월만주
一聲南去雁 啼送海山秋
일성남거안 제송해산추

선유하면서 강가나 배 위에서 밤을 지웠던 선비들이 있었던가 하면, 낚시꾼들은 배를 타고 나가 밤을 새기도 했단다. 어디 낚시뿐이겠는가. 청주 한 병이면 이 밤을 지새우기는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 곁에 가무를 즐기는 여인이 있다면 낚시의 흥은 저리 가라 했을 것이고, 주흥에 어깨춤을 벌렁거렸을 것이니. ‘고요한 밤이건만 고기는 낚시에 하나씩 간간히 물고, 물결은 얕고 배에 가득한 달빛만이 고요하게 흐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기러기 울어 보내는 바다와 산의 가을이여’(江夜)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청묘거사(淸妙居士) 차천로(車天輅:1556-1615)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86년 과거 부정 사건에 관계돼 명천에 유배됐다가 1588년 그의 문재가 인정되고 용서돼 이듬해 통신사 황윤길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던 인물이다. 문장에 뛰어나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전담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고요한 밤이건만 고기는 낚시에 하나씩 간간히 물고 / 물결은 얕고 배에 가득한 달빛만이 흐르네 // 강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들리는데 / 기러기 울어 보내는 바다와 산의 가을이여!’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강 위에서 밤을 보내며’로 번역된다. 배를 타고 낮에 하는 낚시도 그 운치가 제법이지만, 밤에 하는 밤낚시는 그 재미가 제법이란다. 그래서 낚시꾼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낚시를 즐겼다. 술시(戌時)를 알리기가 바쁘게 한 잔씩 들이키는 막걸리 한잔의 묘미는 어디 이태백의 시상에 비할 수 있으랴. 이미 자정(子正)을 알리면서 한숨 돌린 물고기들이 입질을 시작한다.

시인은 이런 시적인 분위기를 감지했던지 밤에 강물에 배를 띄어 놓고 낚시를 즐기면서 쏟아지는 시통 주머니를 가만 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요한 밤이건만 고기는 낚시에 하나씩 간간히 물면서 올라오고, 가벼운 바람에 물결은 얕지만 배에 가득한 달빛만이 흐른다고 했다. 고기를 가득 실었다면 격양가니 어부가 한 소절이라도 부르련만 달빛만 실었다고 했다.

화자는 밤의 소묘라고 놓을 양으로 간간히 들리는 기러기 소리를 벗 삼은 밤낚시의 재미는 옹골졌음을 알게 한다. 강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들리는데, ‘기러기 울어 보내는 바다 산의 가을이여!’라는 감탄문 한 구절을 남기고 만다. 해산(海山)의 가을은 깊어갔던 모양이다.

※한자와 어구

夜靜: 밤이 고요하다. 魚登釣: 고기가 낚싯대를 물고 오르다. 波淺: 파도가 얕다. 月滿舟: 달빛이 배에 가득하다. 달빛에 배에 비추다. // 一聲: 한 소리가 들리다. 南去雁: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啼送: (기러기를) 울면서 보내다. 海山秋: 바다 산의 가을. 가을이 물드는 가을이여!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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