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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푸른 나무 하늘에 떠 있고
이름난 정자가 나루터에 서 있는데
햇빛에 가벼운 바람 강물이 흐르네.
蒼茫樹色接天浮 一處名亭古渡頭(창망수색접천부 일처명정고도두)
暖日輕風微雨過 鴻濛積翠漾江流(난일경풍미우과 홍몽적취양강류)
아지랑이 기운은 봄 하늘을 수놓았다. 너울너울 춤추는가 했더니만, 달아날 듯 달려들 듯한 춤사위가 봄 하늘을 장식한다. 하늘의 천사가 내려온 춤사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지랑이 봄기운은 분명하다. 백마강 줄기를 빙빙 도는 삼년 궁녀의 원혼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저 멀리 계백의 함성까지도 들리는 듯. 아득히 푸른 나무 빛 하늘에 떠있는데, 어느 한 곳 이름난 정자가 옛 나룻가에 서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하늘과 땅은 아득히 푸른 강은 출렁인다(水北亭晴嵐)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일창(一滄) 유치웅(兪致雄:1901-1998)으로 서예가이자 교육자다. 1952년부터 1972년까지 학교법인 보인·명지·오산학원 이사,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성균관부관장, 1974년 국전 추천작가, 1976년 국전 초대작가, 1977년 국전 심사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던 현대의 거물과 같은 인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아득히 푸른 나무 빛 하늘에 떠있는데 / 어느 한 곳 이름난 정자가 옛 나룻가에 서있구나 // 따스한 햇빛은 가벼운 바람에 부슬비가 지나가고 / 하늘과 땅은 아득히 푸른 강은 출렁이며 흐른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수북정 아지랑이 기운’으로 번역된다. 수북정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마강변 자온대 언덕에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지은 정자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옛 일을 회상하면서 음미할 수 있는 멋을 지닌 시상이다. 옛 나루 머리에 지난 일을 간직하면서 ‘해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인 이내를 띠고 있음이 회상된다. 시를 읽으면 맛이 절로 나는 정중동의 한 극치를 보이는 시상이다.
시인은 이러한 자연환경에 도치돼 잠시도 눈을 돌릴 틈도 없이 시낭(詩囊)을 훌훌 털어내는 시상을 만난다. 아득히 푸른 나무 빛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데, 한 곳의 이름난 정자가 옛 나룻가에 서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띄어 보내기 용이한 선경(先景)의 시상치고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말해주는 듯도 하다.
화자는 정(情)을 담기보다는 경(景)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시상을 펼쳐드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따스한 햇볕 가벼운 바람에 부슬비가 지나가고, 하늘과 땅은 아득히 푸른데 강은 출렁이며 흐른다고 했다. 수북정의 아름다움과 옛 역사 한 페이지를 돌이키는 넉넉함이 보이는 시상이다.
※한자와 어구
嵐:산 속에 생기 있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 蒼茫:아득하게 차다, 樹色:물빛, 接天浮:하늘에 접해 떠 있다, 名亭:이름난 정자, 古渡頭: 옛적 나룻가 부두, 暖日:따스한 햇볕, 輕風:가벼운 바람, 微雨:부슬비, 鴻濛:천지자연의 원기, 積翠:겹친 푸른빛, ‘청산’을 뜻함. 漾:출렁거릴 양.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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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