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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山如高士 長在白雲間(원산여고사 장재백운간)
自憐城裏客 可望不可攀(자련성리객 가망부가반)
먼데 산이 마치 높은 선비와 같고
긴긴 시간 백운 속에 있다 하는데
불쌍타 산은 볼 수 있되 오르지 못하니.
산은 우람해서 좋다. 산은 묵직해서 좋고 큰 희망과 포부를 안겨 줘서 좋다. 산 사람들은 산이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산의 의미가 부여된단다. 일주일이 멀다 않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산의 예찬론을 펼친다. 어디 산의 예찬론에만 그치겠는가. 산을 읊어 시상의 얼개를 짜 맞추기도 했다. 백운으로 허리를 감는 산의 의미를 부여한다. ‘먼 산은 마치 높은 선비와 같아서, 오랫동안 백운 속에 있는 것만 같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산은 볼 수 있을지언정 오르지를 못하고 있으니’(詠山)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1921-2006)이다. 1942년 일제강점기에 ‘우리 글씨 쓰는 법’을 저술한 것을 시작으로 평생 한글 고체를 연구해 이른바 ‘일중체’를 만들어 냈던 인물로 널리 알려진다. 하대(下待)를 받던 한글 서체에 힘을 불어넣고 한민족 고유의 글씨체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먼 산이 마치 높은 선비와 같아서 / 오랫동안 백운 속에 있는 것만 같구나 // 불쌍하기 그지없구나! 성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 비록 산은 볼 수 있을지언정 오르지를 못하고 있으니’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먼 곳에 있는 산을 읊다’로 번역된다. 시인은 창가에서 먼 산을 보면서 시를 읊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산을 오르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멀리 있다면 동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산이라 할 수는 없다. 한글 서예의 극치를 이루면서 우리글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시인이고 보면, 시적인 흐름이나 시상의 멋을 가히 달관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을 받을만하다.
시인의 시상은 범상해 보이지 않는다. 첫 구부터 은유적인 색깔을 칠하지는 못했지만, 직유적인 표현에 의해 비유법을 덧칠하고 있음을 본다. 멀리 있는 산이 마치 높은 선비와 같아서 오랫동안 산이 흰 구름 속에 있다고 했다. 한 선비라기보다는 백운 속에 숨은 고고한 신선의 한 기상을 이끌어 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겠다.
화자는 멀리는 있는 정경에 힘을 싣더니만 이제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의 시상 그림을 그려냈다. 참으로 ‘불쌍하구나!’ 성안의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산은 볼 수 있을지언정 오르지를 못하고 있으니 라고 했다. 우리 속담에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遠山: 먼 산. 如: ~과 같다. 高士: 높은 선비. 長: 오랫동안. 在: ~이 있다. 白雲: 백운. 흰 구름. 間: 사이. // 自憐: 스스로 불쌍하다. 城裏客: 성안의 사람들. 곧 서울의 사람들. [客]은 여러 무리들을 지칭함. 可望: 가히 바라보다. 바라 볼 수 있다. 不可攀: 오를 수는 없다. 오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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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10: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