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사전’을 내려주다-
고려시대 어의로 중서문하성의 정2품직인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후 인종의 묘정(廟庭, 사당)에 배향된 인물이 있다. 탐진최씨의 시조가 된 탐진현(강진군) 출신의 최사전(崔思全, 1067-1139)이 그다.

최사전은 호족 출신도 문벌 출신도 아닌 의관 출신이었다. 조부인 최철과 부친 최정도 궁중의 유명한 내의였다. 최사전도 집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의학을 공부했고, 이미 실력을 인정받아 15살 때 궁궐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묘지명에 이름이 사전으로 불리게 된 연유가 다음처럼 나온다.

당시 군주였던 선종은 15살 최사전을 궁궐로 불러 “의자(醫者)는 마땅히 완전함(十全)을 첫 번째로 삼는데, 그대가 상의(上醫)로다”라고 칭찬하며, 어필로 ‘사전’(思全)이란 이름을 써 준다. 본명이 최열이었는데, 이때부터 최사전으로 불리게 된다.

최사전 묘지 앞면

최사전 묘지 뒷면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 이자겸이 난을 일으키다-
최사전은 예종의 어의였다. 예종이 등창(종기)을 앓아 최사전을 불렀는데, 최사전은 작은 종기라 해서 즉시 치료하지 않았다. 후일 등창이 악화된 예종은 한안인, 문공미 등에게 어린 태자를 부탁하고 세상을 뜬다.

당시 조정은 예종의 고명대신(顧命大臣, 뒷일을 부탁하는 임금의 유언을 받은 대신)인 한안인, 문공미 등과 왕의 외척 세력이던 이자겸, 이자량 등이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재상 한안인은 최사전이 선왕인 예종의 종기를 다스리지 못했다고 해서 엄벌을 요청했지만, 인종은 유배 2년으로 끝낸다. 이때부터 최사전은 자신을 보호해 준 인종의 지킴이가 된다.

이자겸의 정적은 크게 두 부류였다. 첫째는 예종의 아우 왕보로 대표되는 종실 세력이었고, 둘째는 한안인으로 대표되는 고명대신들이었다. 한안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어의 최사전은 한안인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것을 두고 음모를 꾸민다고 이자겸에게 모함했다. 이자겸은 이를 빌미 삼아 인종의 아우 왕보를 추대하려는 역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를 들어 한안인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제거했다.

한안인은 승주(지금의 순천) 감물도(지금의 돌산읍)로 유배 후 이자겸의 심복들에 의해 순천 앞바다에 수장되고, 대방공 왕보도 유배길에 오른다. 문공미 등 고명대신과 한안인의 형 한안중 등 정적 50여 명이 유배되고 수백 명의 관료들이 파직된다. 이자겸이 한안인과 왕실 세력을 제거할 때 최사전은 이자겸의 편에 섰던 것이다.

인종의 외조부인 이자겸(李資謙, 1050-1127)은 한안인 등 정적을 제거한 후 셋째·넷째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내 예종은 물론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이 된다. 군권을 장악한 척준경과는 사돈이 돼 당대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이자겸의 최종 목표는 왕위 찬탈이었다.

이자겸이 왕위를 노리자 인종은 왕당파인 최탁 등에게 이자겸 체포를 명령했다. 1126년(인종 4) 2월 최탁과 오탁, 권수 등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진입해 척준경의 아우인 병부상서 척준신과 아들인 내시 척순을 죽인다.

최탁 등의 공격 소식을 접한 이자겸은 사돈인 척준경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들 의장이 거느리고 온 현화사 소속의 승려 3백여 명을 이끌고 궁궐을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고려 궁궐 만월대가 불에 타고 궁궐이 함락된다.

이자겸이 궁궐을 지킨 왕당파를 모두 처단하자 인종은 이자겸이 자신까지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왕위를 넘기겠다는 조서를 내린다. 하지만 대간과 조정 대신의 공론을 두려워 한 이자겸은 왕위 조서를 거부한 후 궁궐에서 물러난다.

당시의 상황을 최사전 묘지명에는 다음처럼 기록하고 있다. “이때 외척이 권세를 함부로 하고 정령(政令)을 사사로이 내어서 그 해악이 나라 안팎의 온 백성에게 미치니 아낙네와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걱정하고 서로 상심하여 심한 해독을 참지 못하였다. 임금께서 그것을 근심하여 병오년(1126) 봄 2월에 한두 대신과 더불어 의(義)를 들어 해로움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적신들이 먼저 알고 대궐을 침범함으로써 궁궐이 불타 스러지니 임금께서 의지할 곳을 잃고 피하여 사저에 계시게 되었다. 외가에서 다스리니, 그때 외척에 부역한 자들은 바로 공과 상을 받았으나 임금을 호위한 자들은 도리어 유배되거나 살해당하였다. 이때 조정에 가득한 경과 사대부들은 거의 모두 외척에 부역했지만, 공(최사전)은 홀로 그러하지 않고 충성으로 임금을 모시기를 시종일관하였다.”

이자겸은 죽임을 당한 자파 인물들에게 벼슬을 추증하고, 척준경에게 벼슬을 높이는 한편 인종을 자신의 사택에 가둔다. 그리고 모든 정사를 자신이 주관하며 결제했다. 기고만장해진 이자겸은 문무백관이 인종에게 절을 올리는 것을 같이 받기도 했으며,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 즉 십팔자 성씨인 ‘이(李)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도참설을 믿고 인종을 독살하려 했지만, 둘째 왕비가 된 넷째 딸이 몰래 인종을 돕는 바람에 실패한다.

‘고려사’의 최사전 열전

- 척준경을 설득하다 -
궁궐을 점령한 이자겸과 척준경은 닥치는 대로 대신들을 죽였지만 최사전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이는 최사전이 의관이었고, 예전에 한안인과 경쟁하던 이자겸 편에 섰던 전력 때문이었다. 최사전은 어의라는 신분을 이용해 이자겸의 사저에 갇힌 인종과 독대할 수 있었다. 최사전은 인종에게 “이자겸이 날뛸 수 있었던 이유는 척준경에게 붙었기 때문입니다. 척준경을 얻으시면 병권이 회수되고, 이자겸은 홀로 남게 될 것입니다”라며, 척준경 회유를 건의했다.

이 내용이 최사전의 묘지명에는 “임금께서 이미 알고 몸을 보전하고 해로움을 멀리하고자 장차 외가(이자겸)에 양위하려 하셨다. 공이 간언하여 이르기를 ‘삼한은 삼한의 삼한이지 폐하의 삼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선왕 태조(왕건)께서 힘써 노력하여 국가를 이루셨으니 청컨대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한참을 우시다가 이내 이르기를 ‘그대가 만약 그것을 되돌릴 수 있다면, 생사를 같이 한 피붙이와 같을 것이오(生死骨肉)’라고 하셨다. 공(최사전)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재차 절하고 저 무리의 수괴를 구슬려 꾀어낼 모략을 은밀히 고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겁에 질린 인종은 “척준경은 국공(國公, 이자겸)과 한마음이고, 사돈 관계까지 맺었다. 심지어 동생 척준신과 아들 척순이 모두 관병에게 살해당했으니 의심스러울 뿐이다”라며 주저하기도 했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책에 의해 척준경과 이자겸을 이간시키기로 작정한다. 그때 마침 이자겸의 아들 이지언의 집사가 척준경의 집사와 시비가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일로 싸움을 벌인 그들은 서로 상전을 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지언의 집사가 홧김에 “너희 상전은 임금이 있는 자리에 대고 활을 쏘고 궁중에 불을 질렀으니 그 죄는 죽음을 면치 못할 터이고, 너도 마땅히 관노로 끌려가야 할 터인데, 감히 네놈이 나를 욕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척준경은 이자겸의 집으로 달려가 의관을 벗어 던지며 따진다. 척준경 측의 불만이 심해지고 이자겸 측에서는 사과를 거부하자, 인종은 사람을 보내 이들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최사전이 제시한 “저 무리의 수괴를 꾀어낼 모략”이란 바로 군권을 장악한 이자겸의 사돈인 척준경에 대한 회유였다. 이자겸과 척준경이 사이가 벌어지자, 인종은 틈을 타 척준경에게 귀금속과 명마 등을 보낸다. 최사전은 인종의 조서를 들고 척준경을 찾아가 전한 뒤 다음과 같이 설득한다. “태조와 열성(列聖)의 신령이 하늘에 계시니, 화복을 두려워해야 하오. 자겸이 자기의 패거리를 믿고 권세를 부리니 신의가 없어 같이 호악(好惡)을 논할 수가 없소. 공(척준경)께선 일심으로 나라를 받드시어 영원히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을 공을 세우소서.”

최사전의 설득은 성공이었다. 척준경은 인종에게 머리를 숙이기로 결심했고, 인종의 명에 따라 이자겸을 체포한다.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것이다.


- 인종의 묘정에 배향되다 -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고 고려 왕실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은 어의 최사전의 공이 매우 컸다. 이는 당시 인종이 한 “삼한을 바로 되돌리고 종사를 안정시킨 것은 공(최사전)의 힘으로 한 것이다”라는 말 속에 잘 묻어 있다.

인종은 어려울 때 자신을 구해준 최사전에게 병부상서와 추충위사공신(推忠衛社功臣)을 내리고 또 수사공상서좌복야(守司空尙書左僕射)를 더한다. 봉해진 ‘위사공신’은 삼한후벽상공신 바로 아래 단계로 인종이 직접 정했으며, 국방부장관 및 상서성의 장관까지 맡긴다. 여기다가 왕족들만 봉해지는 사공의 관직을 더해준다. ‘사공(司空)’은 임금의 고문 구실을 하는 국가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인종은 또 최사전을 형부상서 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승진시키고, 정1품직인 수태위(守太尉)의 명예직을 더한다. 의관으로 궁궐에 나아가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만년에 최사전은 한미한 가문에서 일어나 임금의 총애가 넘친다며 퇴직을 간청한다. 인종은 수태위 및 문하시랑평장사직을 유지하게 해주고 개경 개성부에서 가장 좋은 저택을 하사한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1139년(인종 17) 3월, 지병으로 사망한다. 관직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이었고, 향년 71세였다. 최사전이 사망하자 인종은 3일간 조회를 중지하여 애도했고, 부의를 본래보다 더 많이 줬으며 장경(莊景)이라는 시호를 내린다. 후일 그는 인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최사전 등을 모시고 있는 무양서원 전경(광주시 광산구)

최사전을 주벽으로 모시고 있는 사당, 무양사

노성태·남도역사연구원장

오늘 최사전은 1927년 건립된 광주의 무양서원에 주벽으로 배향돼 기려지고 있다.

무양서원은 탐진최씨들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운 서원인데, 탐진최씨의 시조가 된 최사전 이외에도 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 문절공 유희춘, 충렬공 나덕헌 등이 배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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