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시인·시앤영 원장

싱그러운 계절이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천지가 모두 연두 일색이다. 연두는 착한 사람의 마음처럼 무겁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산은 그 연두 속에서 간간이 연보라빛 오동꽃과 흰 아카시아꽃들을 보여주며 눈을 껌벅이기도 한다. 이처럼 산의 윙크를 받으며 산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몸과 마음이 새로 태어나듯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월이다.

맑은 날, 늦은 저녁의 퇴근길이 가벼워질 때가 있다. 시골길은 한산하므로 속도를 낮춰 차를 달리다 보면 허공의 가로수들이 희끗희끗 빛난다. 마치 쌀뜨물을 뿌려 놓은 듯한 이 정체는 아침 출근길에서 또렷이 발견된다. 이팝나무꽃이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망월 묘역 가는 길의 양옆으로 이팝나무꽃들이 우는 듯 반기는 듯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참배객들이 줄을 서듯 올라가는 모습에서 영원한 사랑은 한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월은 이렇게 시작된다.

꽃이 한창인 요즘에는 새들도 한창이다. 새벽부터 새들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조잘거린다. 나뭇가지와 풀숲과 처마 아래와 낮은 계곡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물어 나른다. 몹시 부지런하다. 생존의 본능은 이처럼 간절하다.

들녘은 일손이 더 한창이다. 농부는 식전에 일과 중 절반을 사용한다. 불린 볍씨를 모판에 깔고 무논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보온덮개로 덮어놓는다. 그리고 모내기 철을 기다린다.

일에 몰두하는 농부의 등은 썰어놓은 호박 조각처럼 굽었다. 애잔하지만 성실함이 묻어 있다.

등은 그 사람의 과거이며 거울이다. 그 거울은 길 위에 있다. 그 길과 등은 자신이 볼 수 없으므로 타인이 보아야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 그래서 등은 그가 걸어온 길이며 아무리 그 길을 감추려 해도 결코 그 자신을 덮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엄동설한에 광장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살얼음 같은 터널을 지나왔다.

국민을 짓밟는 대통령과 그들을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역시 그들이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대번에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조기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언론도 한창이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 그들이 걸어온 길에서 답이 나온다. 그들에겐 한결같이 눈물이 없어 보인다. 독하고 잔인함만 묻어 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이 그렇게 말해준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어느 조직과 단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힘’당은 확실히 ‘국민의 짐’당 같다. 이 당의 과거를 돌아보면 치를 떨고도 부족할 만큼 심장이 아려온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박근혜-이명박-윤석열’ 60여 년간의 집권 기간을 보면, 수 없는 양심적 지식인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고 감옥살이를 했으며 무참히 짓밟혔다. 이들의 기저에는 친일, 독재, 군부, 기득권, 검찰에 이어 이제는 사법권까지 동조하는 모양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15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현재 불안의 안갯속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언제 다시 끔찍한 안개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릴지 모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꽃이 향기로운 건 생존의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 우리도 우리의 생존을 위해 간절한, 그리고 올바른 주권을 행사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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